우찌무라님의 《동물의 역습》서평

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부모님과 아내, 자식, 그리고 멀게는 나를 위해 기도하며, 양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난 이름도 없이, 생명으로서의 절대적 가치마저 부여받지 못한 수많은 동물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살아가는 것이다. 이 책은 그렇게 소중한 것을 알게 해 준 책이다. 한글 책 제목은 상당히 무섭게 다가왔다. 하지만 책을 읽고난 뒤에는 무섭다는 느낌 보다, 인간인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참으로 수많은 동물을 죽이고 학대한 나로서는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아마 어릴적 재미삼아 개구리나 곤충, 파충류 등을 죽여 본 경험들이 한 번 쯤은 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유희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동물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는가? 철학자 답지 않게, 풍부한 과학적인 탐구로 끈기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쳐가는 마크 롤랜즈의 이 책은, 영어 제목처럼, 동물을 우리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동반자로서, 한 생명을 가진 자로서 사유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만큼 이 책의 저자는 철학자답게, 우리의 사유를 철저하게 파헤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저지르고 있는 엄청난 죄악을 고발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인간의 행위를 "원죄"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죽이는 재앙과 보복으로 돌아오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원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가? 우리의 원죄를 다른 이에게 덮어씌운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다. 동물은 우리를 위해 고통 받는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다. 우리에게 어쩔 수 없이 떠맡겨진 것들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초래한 것들을 위해서 동물은 고통 받는다. 우리가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서 얻은 폐암 때문에 고...

EDS and 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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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페로는 레이건 시절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사퇴한 사람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원래는 IBM의 잘나가는 영업맨이었다가 뛰쳐 나와 EDS 라는 회사를 만들어 정보통신 업계의 또 다른 기린아가 된 사람 입니다. EDS 는 SI서비스를 처음 개척한 회사라 할 수 있습니다. 한때는 정보통신업계를 석권하다시피 했습니다. 한국에도 상륙하여 LGEDS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SI라고 하면 System Integrator 를 말하며 컴퓨터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설계하여 회사마다 필요로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그래서 재벌그룹 마다 경쟁적으로 이런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SDS 삼성 데이타 시스템 HIT 현대 정보 시스템 대우 정보 시스템 농심 데이타 시스템 동양시스템즈, 코오롱 정보통신 삼양 데이타 시스템 등 등....... 로스 페로는 IBM의 가장 잘 나가는 영업 대표였습니다. ''영업 대표'' 라는 직함도 컴퓨터 회사.....실제로는 IBM이 처음 만들어낸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Sale Representative 줄여서 SR 이라 하는데 즉 ''영업에 관한 한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란 겁니다. 그만큼 회사가 영업 현장에서 뛰는 담당자에게 많은 재량권과 즉각적인 의사 결정권을 주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로스 페로는 영업수완이 너무나 좋다보니, 실제로 필요한 것 이상의 성능을 지닌 고가의 컴퓨터를 사게되는 고객들이 생겨났습니다. 영업 대표란 실적에 대한 욕심과 목표량에 쫓기는 사람들이다보니까 의욕이 먼저 앞서 온갖 감언이설과 약속을 남발하게되는 위험이 있습니다. 로스 페로는 실제로 컴퓨터를 팔면서 늘 이러한 두 가지 곤란을 겪었습니다. 한 쪽에서는 당신 말에 현혹되어서 너무 비싼 물건을 샀다는 불평이고, 다른 한 쪽은 아직은 그 만한 성능의 컴퓨터는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구매 여력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컴퓨터 용량이 남으면 다른 방법으로 보상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

꼬레아? C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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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 · 정유왜란 동안에 일본으로 잡혀간 조선인 가운데에는 길에 버려졌던 전쟁고아들이 많았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에서 때마침 세계 일주 길에 올랐던 이탈리아 신부 칼 렛티(Carletti)에게 구제되어 조선인으로서 처음으로 멀리 천주교의 총본산인 로마에까지 가서 활동한 안토니오 코레아(Antonio Corea)라는 소년이 있었다. 플로렌스(Florence) 사람인 칼 레티 신부는 1594년에 본국을 떠나 대서양, 서인도제도를 거쳐 남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고 다시 태평양을 건너 필리핀, 일본, 인도를 거쳐 1606년에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 사이에 그는 1597년 6월에 일본 장기에 상륙하여 이듬해 3월까지 9개월 동안 일본에 머물렀는데 이 때 그는 안토니오 코레아를 비롯한 5명의 조선인 소년을 구제하여 인도의 고아(Goa)까지 데리고 갔다가 4명은 이곳에서 놓아주고 안토니오 코레아만을 본국까지 데리고 가서 로마에서 살게 하였다. 그는 전후 13년 동안 걸쳤던 그의 세계일주 기행문을 써서 이를 1708년에 플로렌스에서 출판하게 되었는데 이 책속에서 우리나라와 안토니오 코레아 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코레아(Corea)라는 나라는 9도(道)로 나뉘어져 있다고 말한다. 조선(Ciosien)이라는 이름은 수도로서 국왕이 거주하는 도시의 명칭이며 경기(Quenqui) · 강원(Conguan) · 황해(Hongliay) · 전라(Cioala) · 함경(hienfion) · 충청(Tioncion) · 평안(Pianchin)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나라의 가장 가까운 해안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남녀노소가 노예로 잡혀 왔다. 그들 가운데는 보기에도 딱하리만큼 가련한 어린이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구별없이 헐한 값으로 매매되고 있었다. 나도 12스쿠디(scudi)를 주고 5명을 샀다. 그리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준 다음 그들은 데리고 고아(Goa)까지 가서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한 사람만을 나와 함께 플로렌스로 데리고 왔다. 그는 ...

서양의 성씨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성씨는 장씨와 이씨라고 합니다. 인구가 가장 많은 중국인들 덕분이죠^^ 국내에도 이씨는 물론 장씨도 꽤 많이 있죠. 다음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들입니다. Smith 2,772,200 Johnson 2,232,100 Williams 1,926,200 Jones 1,711,200 Brown 1,711,200 Davis 1,322,700 Miller 1,168,400 Wilson 934,200 Moore 859,800 Taylor 857,000 Miller는 제분공(방앗간주인)에서 유래된 이름 또는 성입니다. 또한 Smith는 대장장이(금속세공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밖에 Abbott은 일반적으로 하인이나 다른 일꾼으로 수도원장(Abbey)의 수하에 있었던 사람에서 유래되었으며 Bishop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사람은 자신이 실제로 주교(Bishop)였다기보다는 주교의 저택에서 일했던 사람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오늘날 영국, 또는 미국을 비롯한 많은 민족이 직업에서 비롯된 성(姓)을 갖고 있지만, 특히 유대인(혹은 유태인이라고도 함)들, 그중에서도 독일과 동유럽 출신 유대인들(아쉬케나지로 불림)의 성씨에 도시명이나 직업이 유달리 아주 많습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과거 이스라엘 왕국 멸망 이후 19세기까지, 유럽의 어느 국가도 유대인들에게 농업이나 토지소유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유대인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도시로 이동, 당시로서는 별볼일 없던 공업이나 상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영어의 Baker에 해당되는 베커(Becker), 푸줏간 주인을 의미하는 플라이셔(Flei- scher), 벽돌공의 뜻을 가진 아인슈타인(Einstein), 직조공(織造工)의 베버(Weber), 금세공사인 골드슈미트(Goldschmidt) 등이 좋은 예입니다. 또 일반 상인을 의미하는 크레이머(Kramer)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라는 영화에 유대인인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을 맡았던 것도 어쩌면 이같은 성의 배경...

추억의 TV 외화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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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 흑백 화면이나 초기의 컬러 화면으로 보던 그 '명작 외화 시리즈.' 잠시 어린시절 추억의 나래를 펴보세요. 미녀 삼총사 화라 화세트! 재클린 비셋! 케이트 잭슨! 셔릴 래드! 타냐 로버츠! 자리를 살짝살짝 바꿔가며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을 빛냈던 미녀 삼총사. 2000년 드류 베리모어, 루시 리우, 카메론 디아즈로 돌아왔습니다. 세상에 그늘이라고는 전혀 없는 영화. 밝고 맑은 코믹 액션물, 세상 걱정이라고는 없는 《미녀삼총사》의 76년 버전 주제곡은 당시 스타일대로 선율이 강조되는 디스코풍 노래입니다. 옛 추억과 현재의 공존. 어린 시절의 미녀들이 지금은 아주머니들이 되어 있습니다만...^^ 600만불의 사나이 우주 비행사였던 스티브 오스틴은 사고를 당해 죽지만 새로운 기술로 그를 인류 최초의 바이오닉 맨으로 재탄생한다. 600만불, 박찬호가 연봉을 1000만불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떠들어 대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값이 떨어진 금액입니다만 (닥터이블이 100만달러를 내놓으라고 하자 까르르 웃는 각국 정상들처럼 말이죠) 당시엔 600만불이 최고로 많은 돈인줄 알았습니다. 어린 시절 숨바꼭질을 할 때면 꼭 '뚜뚜뚜뚜' 소리를 내며 어디있는지 찾아내곤 했습니다. 그럴때면 모두둘 육백만불의 사나이가 되었죠. 소머즈 소머즈는 600만불의 사나이의 '부인'이었을까요? 물론 아니죠. 프로 테니스 선수였던 제이미 소머즈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다가 낙하산이 안펴져서 중상을 입게 됩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스티브 오스틴에 이어 '바이오닉 우먼'을 만들어 냅니다. 소머즈는 '청각'이 발달되었기에, '뚜두뚜뚜' 하면서 먼 곳의 소리를 듣는 훙내를 내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가끔 600만불의 사나이 시리즈와 소머즈 시리즈에 서로 함께 등장해서 활약하기도 했었죠. '펨봇'이라고 불리우는 여자 로봇들과 많이 싸웠는데, 결국 마지막에 펨봇이 밝혀지는 순간에는 얼굴이 떨어져...

적대적 M&A는 절대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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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스트의 SK(주) 주식 매입 계기로 돌아본 M&A… 기업들은 보호장치 요구 대신 경영 투명성 높여야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거리의 여인 비비안(줄리아 로버츠)의 백마 탄 왕자님인 에드워드(리처드 기어)는 직업이 기업사냥꾼이다. 그는 경영문제로 주가가 떨어진 회사를 헐값에 인수해 구조조정을 한 뒤 비싼 값에 되팔아 돈을 버는 사람이다. 의회에까지 막대한 로비력을 과시하며 한 선박회사를 손에 넣으려던 에드워드는 비비안을 만난 뒤 마음을 바꾼다. 결국 경영권 인수를 포기하고 오히려 자신의 돈을 투자해 그 회사를 도와준다. 에드워드의 ‘개과천선’이라는 영화의 설정은 기업사냥꾼에 대한 일반적 시각을 반영한다. “남의 회사 경영권을 빼앗는 것은 나쁜 일이다!” 우리 기업’의 경영권 지켜주자 기업사냥꾼들은 인수합병을 무기로 기업사냥에 나선다. 영어로는 M&A(Merger & Acquisitions)라고 한다. 기존 대주주와 협상을 통해 지분을 넘겨받아 기업 경영권을 인수하는 것이 우호적 M&A인데, 이는 주로 같은 업종의 회사가 합쳐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이뤄진다. 이와 달리 주식시장 안팎에서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강제로 빼앗는 것을 ‘적대적’ M&A라고 한다. 기업사냥꾼들이 쓰는 것이 적대적 M&A다. 물론 적대적 M&A에 나서겠다고 위협해 매입지분을 비싼 값에 대주주에게 되파는 것이 목적인 그린메일(Greenmail)도 있다. 기업을 되팔지 않고 단지 계열사 확장을 위해 다른 회사의 경영권을 빼앗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적대적 M&A는 정말 나쁜 일일까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라는 한 시민단체가 4월11일 발표한 성명서는 적대적 M&A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시민회의는 영국계 증권사인 크레스트 시큐러티즈가 SK(주)의 주식을 매입하면서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운동을 이끈 장하성 교수를 만난 데 대해 “시민단체와 시민운동가가 한국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협력했다는...

꿈을 잃은 사과-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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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는 해적기가 휘날렸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얼굴엔 자랑스러움이 넘쳤다. 그곳은 기업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사람들은 인류 진보를 위해 기꺼이 밤을 새웠고, 회사는 번창해 갔다. 첫 번째 대규모 해고가 일어난 이후, 상황은 급반전됐다. 회사의 꿈이던 개발자들은 비용으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회사를 떠났고, 회사 매출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이 비극이 일어난 곳은 애플컴퓨터였다. 애플컴퓨터는 ‘꿈’을 생산하기 위해 설립됐다. 1976년 스티븐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는 창고에서 ‘개인용 컴퓨터’라는,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컴퓨터라고 하면 방 하나를 가득 채우는 커다란 기계를 연상하게 되던 때였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던 영역이었다. 84년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까지만 해도 애플은 최전선에서 이 꿈을 만들어갔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매킨토시 운영체제, 윈도스, 유닉스를 써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윈도스와 유닉스가 훨씬 편하네’라고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매킨토시와 함께, 레이저 프린터와 어도비가 만들어 깔아 둔 소프트웨어는 처음으로 ‘개인 출판’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모든 게 ‘세상에서 처음, 세상에서 최고’였다. 혁신과 창의성은 독특한 애플의 문화에서 나왔다. 매킨토시 디자인 연구팀은 실제로 별도 건물에서 해적기를 걸어놓고 일했다고 한다. 애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는 일을 돕기 위해서’ 일한다고 대답했다. 물론 이런 특징은 가장 앞선, 가장 좋은, 가장 사용자 친화적인 컴퓨터를 만들어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겠다는 애플의 전략과도 맞아떨어졌다.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람들이 필요하던 애플은,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화를 갖고 있던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피고용인이라기보다는 공동 창업자처럼 움직였다. 금요일 아침마다 회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빵과 크림치즈를 준비해 놓고 아침식사 겸 파티를 벌였다.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파티장의 웃음소리 속에 섞여서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