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은 사과- 애플
연구실에는 해적기가 휘날렸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얼굴엔 자랑스러움이 넘쳤다. 그곳은 기업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사람들은 인류 진보를 위해 기꺼이 밤을 새웠고, 회사는 번창해 갔다.
첫 번째 대규모 해고가 일어난 이후, 상황은 급반전됐다. 회사의 꿈이던 개발자들은 비용으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회사를 떠났고, 회사 매출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이 비극이 일어난 곳은 애플컴퓨터였다.
84년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까지만 해도 애플은 최전선에서 이 꿈을 만들어갔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매킨토시 운영체제, 윈도스, 유닉스를 써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윈도스와 유닉스가 훨씬 편하네’라고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매킨토시와 함께, 레이저 프린터와 어도비가 만들어 깔아 둔 소프트웨어는 처음으로 ‘개인 출판’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모든 게 ‘세상에서 처음, 세상에서 최고’였다.
혁신과 창의성은 독특한 애플의 문화에서 나왔다. 매킨토시 디자인 연구팀은 실제로 별도 건물에서 해적기를 걸어놓고 일했다고 한다. 애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는 일을 돕기 위해서’ 일한다고 대답했다. 물론 이런 특징은 가장 앞선, 가장 좋은, 가장 사용자 친화적인 컴퓨터를 만들어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겠다는 애플의 전략과도 맞아떨어졌다.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람들이 필요하던 애플은,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화를 갖고 있던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피고용인이라기보다는 공동 창업자처럼 움직였다. 금요일 아침마다 회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빵과 크림치즈를 준비해 놓고 아침식사 겸 파티를 벌였다.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파티장의 웃음소리 속에 섞여서 오갔다. 사람들에게 애플은 일을 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얻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해 애플 CEO이던 존 스컬리는 20%의 노동력을 해고했다. 매출 실적이 목표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수익성을 되찾으려면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애플은 전투를 벌이듯 일을 치뤄냈다. 대량해고가 일어나던 날 아침, 모든 사람들은 아침 9시 정각에 책상에 대기하도록 명령받았다. 해고 대상자들은 그 시간부터 상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불려갔다. 상사로부터 해고통지서와 퇴직금을 받아든 해고자들은 돌아올 때 경호원들과 함께 와서 책상을 정리해 개인 물품을 챙겨야 했다. 회사 재산에 손실을 입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오전 11시, 모든 해고자들이 사무실을 떠난 뒤 남은 사람들은 대형 사무실로 불려갔다. 거기서 조직 개편안이 발표되고 모두들 새로운 자리를 할당받았다. 구조조정은 그렇게 번개같이 일어났다.
물론 보안이 완벽할 수는 없었다. 구조조정 소문이 몇 달 전부터 사무실을 배회했다. 소문이 나기 시작할 때부터 일은 거의 진척되지 않았다. 퇴직자들이 그다지 큰 금액을 챙겨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매우 훌륭한 개발자들은 일찌감치 소문을 듣고는 자진해서 해고를 신청하고는 다른 회사로 옮겨가 버렸다. 구조조정이 단행된 날로부터 몇 달 동안도 후유증은 이어졌다.
애플은 첫 번째 대량해고 뒤 ‘신 고용계약’이라는 새로운 인사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우선 팀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하는 문화를 적극 들여왔다. 대량해고가 있던 그해 애플은 고용 안정성이나 직무 연속성을 보장하지 않는 대신 강도 높은 훈련과 100% 성과 위주 보상을 해주는 고용제도를 도입했다.
신 고용계약에서 애플은 개발자들을 외부 컨설턴트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부서 개념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는 대신, 어려운 프로젝트를 주고 프로젝트가 달성되면 여기에 따라 보상을 해주기 시작했다. 물론 프로젝트를 할당받지 못하면 보상도 없으니 회사에서 나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A, B, C 3개 등급으로 평가해 A등급만을 회사에 잡아두고 C등급은 장기적으로 자연스럽게 회사를 나가도록 유도하기 시작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금요일 아침의 파티도 없애버렸다.
프로젝트 중심의 업무 할당을 시작하자, 새로 들어온 의욕 넘치는 개발자들은 어려운 프로젝트를 통해 일을 열심히 배우고는 이를 끝내자마자 좀 더 안정된 다른 회사에 좋은 조건을 약속받고 옮겨가 버렸다. 오랫동안 애플에 머물러 있던 개발자들은 ‘잘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프로젝트 기간을 늘리고 일을 더디게 진척시켰다. 해고 이전 애플에서 사람들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일했지만, 해고 이후 애플에서 사람들은 ‘잘리지 않기 위해’ 일했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문화가 좋아 밤샘작업을 하던 훌륭한 개발자들은 그런 문화를 찾아 다른 회사로 옮겨갔다.
매출은 더 줄었고 대량해고는 이어졌다. 애플은 91년 10%의 인력을 더 감축해야 했다. 93년에는 마이클 스핀들러가 CEO자리를 이어받았고, 14%인 2500명의 인력을 감축하면서 비용 절감 드라이브를 이어갔다. 97년에는 남은 사람 가운데 거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초대형 인력 감축이 벌어졌다. 이어지는 해고 속에 좋은 개발자들과 매출실적도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물론 사람이 전부는 아니다. 애플의 수익성과 생산성 하락에는 잘못된 시장전략과 투자 판단도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애플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던 ‘꿈’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숫자 뒤에 숨겨진, 사람과 문화를 놓친 건조한 전략적 사고가 때로는 참혹한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애플은 단적으로 보여줬다. 자신의 가장 큰 경쟁력이던 ‘꿈’이 일하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었기에, 결국 애플은 자신의 꿈을 경쟁자들에게 넘겨줘야 했다.
첫 번째 대규모 해고가 일어난 이후, 상황은 급반전됐다. 회사의 꿈이던 개발자들은 비용으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회사를 떠났고, 회사 매출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이 비극이 일어난 곳은 애플컴퓨터였다.
애플컴퓨터는 ‘꿈’을 생산하기 위해 설립됐다. 1976년 스티븐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는 창고에서 ‘개인용 컴퓨터’라는,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컴퓨터라고 하면 방 하나를 가득 채우는 커다란 기계를 연상하게 되던 때였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던 영역이었다.
84년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까지만 해도 애플은 최전선에서 이 꿈을 만들어갔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매킨토시 운영체제, 윈도스, 유닉스를 써본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윈도스와 유닉스가 훨씬 편하네’라고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매킨토시와 함께, 레이저 프린터와 어도비가 만들어 깔아 둔 소프트웨어는 처음으로 ‘개인 출판’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모든 게 ‘세상에서 처음, 세상에서 최고’였다.
혁신과 창의성은 독특한 애플의 문화에서 나왔다. 매킨토시 디자인 연구팀은 실제로 별도 건물에서 해적기를 걸어놓고 일했다고 한다. 애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는 일을 돕기 위해서’ 일한다고 대답했다. 물론 이런 특징은 가장 앞선, 가장 좋은, 가장 사용자 친화적인 컴퓨터를 만들어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겠다는 애플의 전략과도 맞아떨어졌다.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람들이 필요하던 애플은,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좋아하는 문화를 갖고 있던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피고용인이라기보다는 공동 창업자처럼 움직였다. 금요일 아침마다 회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빵과 크림치즈를 준비해 놓고 아침식사 겸 파티를 벌였다.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파티장의 웃음소리 속에 섞여서 오갔다. 사람들에게 애플은 일을 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얻는 장소이기도 했다.
경호원의 호위 속에 쫓겨나는 해고자
그러나 애플도 흐르는 시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성장기업들이 언젠가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를 애플이라고 피해갈 수 없었다. 독주하던 시장에 경쟁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제 단순한 창의성보다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매출이 압박을 받으면서 이익을 내기가 어려워졌다. 고민이 시작됐다. 그 결과 85년 애플은 역사상 최초로 거대한 전략적 선택을 하게 된다. 비용절감과 구조조정이다.그해 애플 CEO이던 존 스컬리는 20%의 노동력을 해고했다. 매출 실적이 목표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수익성을 되찾으려면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애플은 전투를 벌이듯 일을 치뤄냈다. 대량해고가 일어나던 날 아침, 모든 사람들은 아침 9시 정각에 책상에 대기하도록 명령받았다. 해고 대상자들은 그 시간부터 상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불려갔다. 상사로부터 해고통지서와 퇴직금을 받아든 해고자들은 돌아올 때 경호원들과 함께 와서 책상을 정리해 개인 물품을 챙겨야 했다. 회사 재산에 손실을 입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오전 11시, 모든 해고자들이 사무실을 떠난 뒤 남은 사람들은 대형 사무실로 불려갔다. 거기서 조직 개편안이 발표되고 모두들 새로운 자리를 할당받았다. 구조조정은 그렇게 번개같이 일어났다.
물론 보안이 완벽할 수는 없었다. 구조조정 소문이 몇 달 전부터 사무실을 배회했다. 소문이 나기 시작할 때부터 일은 거의 진척되지 않았다. 퇴직자들이 그다지 큰 금액을 챙겨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매우 훌륭한 개발자들은 일찌감치 소문을 듣고는 자진해서 해고를 신청하고는 다른 회사로 옮겨가 버렸다. 구조조정이 단행된 날로부터 몇 달 동안도 후유증은 이어졌다.
애플은 첫 번째 대량해고 뒤 ‘신 고용계약’이라는 새로운 인사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우선 팀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하는 문화를 적극 들여왔다. 대량해고가 있던 그해 애플은 고용 안정성이나 직무 연속성을 보장하지 않는 대신 강도 높은 훈련과 100% 성과 위주 보상을 해주는 고용제도를 도입했다.
신 고용계약에서 애플은 개발자들을 외부 컨설턴트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부서 개념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는 대신, 어려운 프로젝트를 주고 프로젝트가 달성되면 여기에 따라 보상을 해주기 시작했다. 물론 프로젝트를 할당받지 못하면 보상도 없으니 회사에서 나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A, B, C 3개 등급으로 평가해 A등급만을 회사에 잡아두고 C등급은 장기적으로 자연스럽게 회사를 나가도록 유도하기 시작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금요일 아침의 파티도 없애버렸다.
‘잘리지 않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
당시 환경에서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은 많은 기업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이런 방법으로 생산성을 높이기도 했다. 개인 성과 중심 직무평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애플에서의 결과는 달랐다.프로젝트 중심의 업무 할당을 시작하자, 새로 들어온 의욕 넘치는 개발자들은 어려운 프로젝트를 통해 일을 열심히 배우고는 이를 끝내자마자 좀 더 안정된 다른 회사에 좋은 조건을 약속받고 옮겨가 버렸다. 오랫동안 애플에 머물러 있던 개발자들은 ‘잘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프로젝트 기간을 늘리고 일을 더디게 진척시켰다. 해고 이전 애플에서 사람들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일했지만, 해고 이후 애플에서 사람들은 ‘잘리지 않기 위해’ 일했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문화가 좋아 밤샘작업을 하던 훌륭한 개발자들은 그런 문화를 찾아 다른 회사로 옮겨갔다.
매출은 더 줄었고 대량해고는 이어졌다. 애플은 91년 10%의 인력을 더 감축해야 했다. 93년에는 마이클 스핀들러가 CEO자리를 이어받았고, 14%인 2500명의 인력을 감축하면서 비용 절감 드라이브를 이어갔다. 97년에는 남은 사람 가운데 거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초대형 인력 감축이 벌어졌다. 이어지는 해고 속에 좋은 개발자들과 매출실적도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물론 사람이 전부는 아니다. 애플의 수익성과 생산성 하락에는 잘못된 시장전략과 투자 판단도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애플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이던 ‘꿈’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다. 숫자 뒤에 숨겨진, 사람과 문화를 놓친 건조한 전략적 사고가 때로는 참혹한 결과를 빚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애플은 단적으로 보여줬다. 자신의 가장 큰 경쟁력이던 ‘꿈’이 일하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었기에, 결국 애플은 자신의 꿈을 경쟁자들에게 넘겨줘야 했다.
[Economy21 197호]
마이포지셔닝 번역작업 중 수집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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