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는 원작을 충실하고 정확하게 번역한다. 반면 B는 도착문화에 친숙한 감정과 과정을 적절히 섞어서 번역한다. 때로는 원작에 없는 문장을 가미하기도 한다. B의 번역은 원작에서 다소 불완전해 보였던 부분을 잘 보완해주기도 한다. 다소 삐걱거렸던 추론선도 매끄러워지면서 설득력도 높아졌다. 그 결과 원작이 출발문화에서 원래 가지고 있던 위상보다 번역작이 도착문화에서 갖는 위상이 훨씬 높아졌다. 사실 이것은 번역이라기보다 창작에 가까웠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B의 번역을 사용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어떤 원문주의자가 나타나 그것은 "번역이 아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한다. 원작에 대한 충실성이 정말 중요한 것인가? 번역가의 창조성이 더 중요한 것인가? 대개의 독자들은 B보다 A가 올바른 번역이라고 말할 것이다. 출판사들이 B를 선호하는 것은 책을 팔아 수익을 남기고 싶어하는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독자를 속이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범위를 넓혀 조망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임윤찬이 라흐마니노프를 피아노로 연주할 때 우리가 환호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기존의 무수한 연주들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악보가 달라졌는가? 원작이 달라졌는가? 아니다. 그것은 해석에 자신만의 영감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임윤찬이 청중을 속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연극들도 무수히 각색되어 무대에 오른다. 원작에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평면적인 인물이 어느 한 배우에 의해 입체적인 인물로 부각되었을 때, 그는 원작을 배반한 것일까? 그의 훌륭한 연기에 찬사를 보내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음악이나 연극/영화는 단시간/공동소비되는 예술장르이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가 즉각적이고, 금방 스타로 떠오르고 돈이 모인다. 반면 책 특히 번역은 장시간/개별소비되는 장르이기 때문에 그 효과도 미미하고, 심지어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다.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원래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