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아이돌의 무대를 보면서

뉴진스의 무대를 볼 때마다 하니라는 멤버가 눈에 들어온다. 특별하게 튀지도 않으면서 혼신을 다해 자신이 맡은 역할을 다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K-pop 아이돌그룹의 칼군무를 생각해보면, 누구 하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음악가들을 볼 때마다 드는 느낌 역시, 튀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세련되고 섬세하다는 것이다. '사회화'가 매우 잘 되어있는 인간이다. 그래서 혼자 무언가를 하기보다, 그룹댄스나 그룹연주 같은 '협동예술'을 한다는 것은 개인에게 뭔가 특별한 습관이나 태도를 심어줄 것 같다. 그래서 제미나이에게 물어봤다. 어릴 때부터 그룹 연주나 그룹 댄스와 같이 **'타인과 호흡을 맞추는 훈련'**을 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사회적, 정서적으로 매우 중요한 태도와 습관을 형성해 줍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핵심적인 몇 가지를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자기 조절'과 '전체 흐름'을 읽는 태도 그룹 활동의 핵심은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남보다 빠르거나 튀면 전체가 망가진다는 점입니다. 억제와 조절: 내가 더 크게 연주하고 싶거나 더 돋보이는 동작을 하고 싶어도, 전체의 균형을 위해 나를 낮추고 박자를 맞추는 법을 배웁니다. 경청과 관찰: 연주자는 옆 사람의 소리를 들어야 하고, 무용수는 옆 사람의 동선을 눈으로 쫓아야 합니다. 이는 타인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깊은 **집중력(Mindfulness)**으로 이어집니다. 2. '책임감'과 '상호 의존성'의 습관 나의 실수가 그룹 전체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경험은 강력한 책임감을 심어줍니다. 역할 완수: "내가 내 몫을 하지 않으면 팀이 멈춘다"는 인식을 통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이 몸에 뱁니다. 공동체 의식: 내가 힘들 때 동료의 도움을 받고, 동료가 흔들릴 때 내가 박자를 잡아주는 과정을 통해 **'함께일 때 더 ...

소통불능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어주는 다리가 되는 소통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자신이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의미와 정보 중에서 일부를 말로 표현해야 하는데, 어느 부분부터 말로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 판단하는 문턱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많은 정보를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이미 이해하고 있거나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표로 전환하는 문턱이 높을 것이고, 반대로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표로 전환하는 문턱이 낮을 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기질에 따라 기표전환문턱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상황은 구체적으로 세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대화내용 field: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느냐? 대화상대 tenor: 누구와 이야기하느냐? 대화방법 mode: 어떤 방법으로 이야기하느냐? 사실 이 따분한 소통이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오늘날 일상적인 대화도구가 된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가끔 경험하는 어색한 분위기에 대해 좀더 거리를 두고 생각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더 가깝게 연결해준다는 도구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나의 경험을 기초로 정리해본다.  field: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다를 수 있다. 내가 관심없는 주제에 대해 모두들 떠들고 있을 때 가끔은 대화에 참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대화에 참여하든 참여하지 않든 자발적 선택이지만, 소통이라는 것 자체가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나도 한 마디 거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관심없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겉돌기 마련이고 무리하게 주제전환topic shift를 시도하다가 원망을 사기 쉽다. tenor: 카카오톡에서는 현실의 관계가 그대로 전이된다. 물론 카카오톡은 모든 말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말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현실에서 매우 가까운 사람과 카카오톡을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가깝다고 말을 막했다가 오해를 살 수도 있고, 문제가 될 수도 있...

역사는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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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카의  《 역사란 무엇인가 》 이 책의 명성을 익히 알기에 드디어 도전을 하고 있다. 같은 번역가로서 정말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번역이 개쓰레기다. 이번 주에는  《 역사란 무엇인가 》  3장을 읽었다. 3장을 읽고 내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핵심주장  역사는 과학이다 경험자료( 사실 )를 바탕으로 원리를 탐구하고, 원리를 바탕으로 경험자료를 수집한다는 측면에서 역사와 과학은 연구방법이 같다. 하지만 전통적인 학자들은 여전히 역사는 과학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카는 이러한 주장을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이에 대해 반박한다. 반론1  역사는 특수한 사건을 다룬다 과학은 보편적 현상을 다루지만 역사는 개별적인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과학과 다르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개별적인 인물, 사건을 수집하는 것을 역사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역사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개별사건들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원리를 끄집어내는 학문이다. 개별사건에 집착하는 것은 역사연구자라기보다는 잡학지식수집가에 불과하다. 반론2  역사를 알아봤자 아무 쓸모가 없다 역사가 특수한 사건만 다루는 잡학지식수집에 불과하다면, 역사는 쓸모없으며, 교훈도 줄 수 없다. 하지만 다양한 사건들을 연구하여 원리를 밝혀낸다면, 당연히 현실적인 교훈을 줄 수 있다. 반론3  역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역사가 특수한 사건만 다루는 잡학지식수집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 유용한 지식기반이 될 수 있다. 반론4  역사는 객관적일 수 없다 주관적인 인간이 주관적인 인간의 일을 관찰하는 것이 어떻게 객관적일 수 있느냐는 말은 그럴 듯해보이지만, 물리학에서조차 오늘날 주체-객체 2분법은 무너지고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객관적 객체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역사가 과학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반론5.1  역사는 종교와 뒤섞일 수 있...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개방성과 확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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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1권》 로마가 건국되어 기틀을 잡아가는 과정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알게 된 인상깊은 사실은, 로마인들이 원래부터 뛰어난 부족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지성은 그리스보다 떨어지고, 체력은 켈트보다 떨어지고, 기술력은 에트루리아보다 떨어지고, 경제력은 카르타고보다 떨어졌다. 그럼에도 다른 모든 부족들을 물리치고 로마가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채워줄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개방성 때문이었다. 로마는 여자를 얻기 위해 사비니를 약탈/합병하고,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라틴을 통합하고, 에트루리아를 편입하였는데, 신기한 것은  왕정 시대 일곱 왕들 중 다섯 왕이 사비니와 에트루리아 출신이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왕위는 자신의 혈통이 이어나가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 것은 동양의 역사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테베레강 언덕에서 농사 짓던 무식하고 힘쎈 농사꾼들이 세운 나라가 전세계를 호령하는 대제국이 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바로 이러한 파격적인 '개방성' 때문이었다. 또한 그러한 개방성이 공정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로마인들은 오랜 세월 사회/정치제도를 갈고닦았을 것이다. 그 결과, 가장 효율적인 정치체제를 만들기 위해 왕정에서 시작하여, 공화정으로 넘어갔다가, 제정까지 나아간다. 너무 똑똑하여 뭐든 혼자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잘 할 줄 아는 것은 없지만 그것을 대신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잘 찾는 사람이 성공하기 마련이다.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기득권만 안위를 누릴 수 있는 공고한 체제(e.g., 학벌과 부동산)를 깨부수고 사회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새로운 인재들, 이민자들, 또 AI를 비롯한 새롭게 등장할 기계인간들을 적극적으로 사회운영의 핵심동력으로 포섭해야 한다. 놀라운 개방성 속에서도 로마는 끝없는 영토확장을 통해 얻은 부를 인재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줌으로써 사회안정을 이루고 발전해나갔다. 지금은 끝없는 기술개발과 시장확대와 수...

학대와 호혜

어린 시절 학대와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성향 어릴 적 학대나 방임의 경험이 성인이 되었을 때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성향(Self-sacrificing behavior)'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심리학적으로 매우 빈번하게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이는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생존 전략'이 고착화된 결과로 봅니다. 왜 이런 성향이 만들어지는지, 그 심리적 메커니즘을 네 가지 핵심 포인트로 정리해 드립니다. 1. 생존을 위한 '과도한 순응' (Fawning Response)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전문가인 피트 워커(Pete Walker)는 투쟁(Fight), 도주(Flight), 경직(Freeze) 외에 '복종/비굴(Fawn)'이라는 네 번째 반응을 제시했습니다. 학대 상황에서 공격하거나 도망갈 수 없는 아이는 가해자의 기분을 살피고, 요구를 완벽하게 들어줌으로써 폭력을 최소화하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기분을 맞추는 것이 안전하다"는 학습이 뇌에 각인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자기 욕구를 버리고 희생하는 패턴을 보입니다. 2. 낮은 자기 가치감과 '조건부 사랑' 학대받은 아이는 자신이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대신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만, 혹은 나를 희생해야만 쓸모 있는 사람이다"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들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바닥날 때까지 쏟아붓는 '피플 플리저(People-Pleaser)'가 되기 쉽습니다. 3. 경계(Boundary) 설정 능력의 상실 정상적인 양육 환경에서는 아이가 "싫어"라고 말하며 자신의 경계를 세우는 법을 배웁니다. 하지만 학대 환경에서는 아이의 경계가 처참히 무너집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몸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의 무...

인간관계의 기본원리: give and take

인간관계에서 호혜성 원칙(Reciprocity Principle)은 단순한 에티켓을 넘어,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심리적 골격'과 같습니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이 원칙이 무너질 때 관계는 급격히 균열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호혜원칙이 인간관계 유지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해 드립니다. 1. 관계의 신뢰도와 예측 가능성 호혜성은 상대방이 '나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형성합니다. 내가 호의를 베풀었을 때 상대가 반응한다면, 우리는 그 관계를 안전하고 예측가능한 것으로 인식합니다. 심리적 부채감: 인간은 호의를 받으면 이를 갚아야 한다는 본능적인 부채감 을 느낍니다. 이를 적절히 해소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관계의 결속력이 강해집니다. 2. 정서적 균형과 '사회적 교환 이론' 심리학의 사회적 교환 이론(Social Exchange Theory)에 따르면, 사람들은 관계에서 얻는 보상(기쁨, 도움)과 비용(시간, 노력)의 균형을 맞추려 합니다. 불균형의 결과: 한쪽만 계속 베푸는 '일방통행'식 관계는 주는 사람에게는 정서적 소진(Burnout)을, 받는 사람에게는 미안함이나 부담감을 줍니다. 결국 비용이 보상보다 커지는 순간, 인간관계는 정리단계에 접어듭니다. 3. 진화론적 생존 전략 인류학적 관점에서 호혜성은 생존을 위한 필수전략이었습니다. 협동하는 집단이 생존확률이 높았기에, 호혜성을 지키지 않는 이른바 ' 무임승차자(Free-rider)'를 경계하고 배제하는 유전자 가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즉, 호혜성을 지키지 않는 것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자격'을 의심받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 주의할 점: '거래'와 '관계' 사이의 선 타기 호혜성이 중요하다고 해서 모든 호의를 1:1 장부 기록하듯 되갚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친밀한 관계: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 사이에서는 ...

번역가의 삶 1

지금은 AI의 도움을 받아 번역을 그나마 조금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번역은 배우기가 매우 까다로운 일 중 하나였습니다. 제대로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읽고 쓰는 능력 위에, 수준 높은 외국어 해독능력을 쌓아야 하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비판적 탐구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능력 중 어느 것도 1-2년 노력한다고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긴 시간, 갈고 닦아야만 얻을 수 있는 고차원적인 능력이죠. 물론 이 세 가지 능력을 갖추었다고 해서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들,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한 자리에 앉아서 읽고 쓰는 작업을 긴 시간 쉬지 않고 반복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가벼운 책이라고 해도 300쪽 정도 되는 책 한 권을 번역하려면 최소 6-7주는 걸립니다. 분량이 조금 되거나, 책 속에 담겨있는 정보가 복잡하거나 지식수준이 높은 책은 3개월이 넘어가기 일쑤입니다. 혹시 드라마 같은 데 나오는 멋진 번역가를 상상하시면 안 됩니다. 낮에는 한가롭게 산책을 하며 여유를 즐긴다던가, 노트북 하나만 들고 여행을 하면서 틈틈이 번역을 한다던가, 그런 그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6-7주 동안 한 권을 번역하려면 하루 10시간씩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책상 앞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토요일 일요일 그런 것도 없습니다. 공휴일도 없고 쉬지 않고 일해야 합니다. 물론 경력이 쌓이고 어느 정도 일이 익숙해지면 작업속도가 조금 빨라지기는 하겠지만, 극적으로 빨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루 8시간 정도만 일해서 마감을 할 수 있다면, 그나마 자리잡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번역을 한두 권하고 나면, 절반 이상은 때려 칩니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삶이 피폐해지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시간관리를 해야 하는데, 이런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계획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밀린 작업을 따라잡기 위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일을 하다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