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03의 게시물 표시

레일트랙의 종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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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1979년 보수당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집권한 이후 가스, 수도,통신 등 국영기업체의 민영화를 강력히 추진했지만, 석탄과 함께 철도 민영화는 존 메이저 총리가 92년 총선에서 이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뒤인 94년에야 시작됐다. 앞서 대처 집권 때인 88년 철도민영화 백서가 마련됐으나 야당인 노동당과 철도 노동자들의 반발로 흐지부지됐다. 영국정부는 국영철도를 민영화하면 정부의 재정지출 감소와 서비스 개선 등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철도 노동자들은 국민부담과 사고 증가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영국 정부는 먼저 국영철도회사를 기능별로 100여개로 분할했다. 이들 회사는 민간자본에 인수돼 여객운송회사 25개와 화물운송회사 3개로 재편성됐다. 영국 정부는 이들 기업에 5~15년짜리 사업면허를 줘 영업하도록 했다. 영국 정부는 이와 함께 철도의 유지·보수 관리를 맡은 회사인 레일트랙을 공기업 형태로 설립해 나중에 주식을 매각했다. 운송회사들은 "레일트랙"에 철도 사용료를 낸다. 레일트랙은 2001년 10월, 설립 6년만에 파산하여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민영철도가 제때 운행되는 비율은 전체 편성 수의 79% 수준으로 프랑스의 80%와 독일의 90%보다 낮다. 또한 사고율 증가, 편법 요금인상, 서비스 질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의 철도지원금은 계속 줄어들었다. 결국 다시 국유화되고 말았다. 선택의기술  번역작업 중 수집한 자료

잭 웰치- 피도 눈물도 없는 미국식 경영의 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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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기업인 GE의 회장을 20년간(1981~2001) 지낸 전문경영인이다. 메사추세츠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리노이대학에서 화학공학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GE의 플라스틱부문에 입사를 하였다. 그는 33세에 GE 역사상 가장 젊은 사업담당 총괄 관리자가 되었으며 부회장을 거쳐 1981년 45세의 나이로 GE의 8대회장이 되었다. 그는 사장에 오른 이래 당시 1백20억달러였던 회사 가치를 몇십배로 부풀려 놓아 '경영의 귀재'라 불린다. 1981년에 GE는 주로 산업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로서 매출액이 279억달러였으나 오늘날에는 우주산업에서부터 TV와 금융업에까지 진출한 거대기업으로서 1700억달러의 매출을 자랑하고 있다. GE는 잭 웰치 회장이 취임한 이래 국제시장에서 1, 2위를 하는 사업만을 남겨놓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핵심사업분야, 첨단기술사업분야, 서비스사업분야의 3개 분야로 정리하였다. 회장에 취임할 당시 170개에 이르는 사업부 중 110개 부문을 정리하였다. 1991년 GE는 IBM을 추월하여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 되었다. GE는 잭 웰치 회장의 최정상만을 고집하는 No.1 또는 No.2 원칙에 따라서 '통합된 다양성' '세계화' '기업문화' '벽 없는 조직' 'work-out' '스트레치 목표' '변화가속운동' '6-시그마 품질경영운동' 등 탁월한 경영 철학을 가진 지속적인 경영혁신운동으로 세계초일류기업의 모범이 되었다. 속도(speed), 간결성(simplicity), 자신감(self-confidence)으로 요약되는 웰치의 '3s 리더십' 또한 유명하다. 사장 취임후 5년 간 10만명의 종업원을 해고하는 감량경영을 실시하면서 80년대초 미 업계에 불어닥친 [리스트럭처링] 바람을 주도했고, 그래서 "피도 눈물도 없는", ...

서비스의 신화 노드스트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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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스트롬은 시애틀에 본사를 둔 1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최고의 백화점 중 하나다. 노드스트롬의 고객 서비스 정신은 창업자인 노드스트롬에서 나왔다. 노드스트롬은 미국으로 이민 와서 철도 노동자, 벌목공, 광부 등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도 오직 근면과 성실을 통해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1901년 그는 구두가게를 열어 큰 돈을 벌었다. 그 후 구두가게는 백화점으로 성장해나갔다. 이것이 오늘날 노드스트롬이다. 노드스트롬은 훗날 손자들을 모두 백화점의 신발매장에서 일하게 했다. 고객들 앞에서 '무릎을 끓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오늘날 노드스트롬의 고객 서비스 정신의 밑바탕이 된 셈이다. 노드스트롬은 고객에게 절대로 'No'라고 얘기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백화점의 뛰어난 고객 서비스를 보여주는 널리 알려진 몇몇 일화가 있다. 사례 1 어느 날 중년의 아주머니가 옷 한 벌을 사곤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나갔다. 그런데 공항에 가보니 비행기표가 없었다. 서두르다가 그만 비행기표를 노드스트롬 백화점 의류 매장에 놓고 온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아주머니에게 비행기표를 건넸다. 그 사람은 바로 의류 매장의 여사원이었다. 그녀는 고객이 놓고 간 비행기표를 들고 부랴부랴 공항까지 달려온 것이었다. 사례 2 어떤 노인이 노드스트롬매장에 타이어를 반품하러 왔다. 그런데 그 타이어는 노드스트롬매장에서 구입한 것이 아니라 다른 상점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하지만 판매사원은 두말 않고 타이어 값을 즉석에서 내주었다. 사례 3 세일이 끝난 다음날, 한 부인이 노드스트롬에 바지를 사러 왔다. 그녀는 세일 기간이 끝난 줄도 모르고 자기가 눈여겨두었던 고급 브랜드의 바지를 사고 싶어했다. 그런데 그녀에게 맞는 사이즈가 모두 팔리고 없었다. 판매사원은 그녀가 원하는 바지가 백화점 내에 있는지 연락해보았다. 유감스럽게도 노드스트롬 매장 내에는 그 바지가 없었다. 그러자 ...

Boo.com의 6개월 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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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화려한 웹사이트 ‘진수식’을 갖고 출범했던 영국의 ‘부닷컴Boo.com’이 사업개시 6개월만에 파산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부닷컴은 전세계 고급 스포츠의류의 온라인 소매상을 표방한 닷컴열풍의 대표기업이였다. 베네통 패밀리, 베르나르 아르노 등 이탈리아의 세계적 의류업체와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미국내 최대 투자은행이 주주로 참여했던 부닷컴은 창업 당시 1,500억원에 달하는 초기자본으로 관련 업계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인터넷 잡지인 <인더스터리 스탠더드><포천>의 커버 스토리로 등장하고, <뉴스위크><보그Vogue>등 유명 잡지들이 앞다퉈 취재경쟁을 할 정도로 온라인 소매업계의 대표주자로 주목받았다. 한 때는 회사가치가 4천6백억원이상 평가받기도 했다. 부닷컴 소유주이자 모델인 카즈사 린더와 언스트 맘스틴은 2000년 5월 추가 자금조달에 실패해 파산이 불가피하다” 며 기업컨설팅회사인 KPMG에 기업청산을 신청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인터넷 업체중 하나로 꼽히며, 화려한 브랜드네임을 자랑했던 부닷컴이 불과 6개월여만에 중도하차하자, 온라인 소매업계(B2C;Business to Consumer)는 충격속에 ‘신용경색에 따른 연쇄 부도의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파국의 원인은 마케팅과 기술개발에 투입된 엄청난 비용과 웹 서버의 기술적 결함에 따른 영업손실. 특히 웹 사이트가 예정보다 5개월이나 늦은 지난해 11월 개통되는 바람에 600만달러를 쏟아부으며 준비한 봄·여름 의류품이 재고품으로 전락하면서 급전직하했다. 인터넷 창투회사인 ‘뉴미디어 스파크’의 마이클 위태커 수석이사는 “재고관리, 발송 등 전통적인 오프라인 영업방식을 병행하지 않은 채 온라인만으로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부닷컴의 파산은 닷컴 기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 2000년 5월 19일자 선택의기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