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웰치- 피도 눈물도 없는 미국식 경영의 귀재


다국적 기업인 GE의 회장을 20년간(1981~2001) 지낸 전문경영인이다. 메사추세츠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리노이대학에서 화학공학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GE의 플라스틱부문에 입사를 하였다. 그는 33세에 GE 역사상 가장 젊은 사업담당 총괄 관리자가 되었으며 부회장을 거쳐 1981년 45세의 나이로 GE의 8대회장이 되었다.

그는 사장에 오른 이래 당시 1백20억달러였던 회사 가치를 몇십배로 부풀려 놓아 '경영의 귀재'라 불린다. 1981년에 GE는 주로 산업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로서 매출액이 279억달러였으나 오늘날에는 우주산업에서부터 TV와 금융업에까지 진출한 거대기업으로서 1700억달러의 매출을 자랑하고 있다.

GE는 잭 웰치 회장이 취임한 이래 국제시장에서 1, 2위를 하는 사업만을 남겨놓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핵심사업분야, 첨단기술사업분야, 서비스사업분야의 3개 분야로 정리하였다. 회장에 취임할 당시 170개에 이르는 사업부 중 110개 부문을 정리하였다. 1991년 GE는 IBM을 추월하여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 되었다.

GE는 잭 웰치 회장의 최정상만을 고집하는 No.1 또는 No.2 원칙에 따라서 '통합된 다양성' '세계화' '기업문화' '벽 없는 조직' 'work-out' '스트레치 목표' '변화가속운동' '6-시그마 품질경영운동' 등 탁월한 경영 철학을 가진 지속적인 경영혁신운동으로 세계초일류기업의 모범이 되었다. 속도(speed), 간결성(simplicity), 자신감(self-confidence)으로 요약되는 웰치의 '3s 리더십' 또한 유명하다.

사장 취임후 5년 간 10만명의 종업원을 해고하는 감량경영을 실시하면서 80년대초 미 업계에 불어닥친 [리스트럭처링] 바람을 주도했고, 그래서 "피도 눈물도 없는", "중성자(neutron) 잭"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러면서도 잭 웰치는 자신의 보수만은 계속 올렸다. 주총에서 종업원들을 대량 해고하면서 자신의 임금만 크게 올린 이유를 따졌더니 ‘나는 연봉의 수백배에 이르는 이익을 남겼다’고 말했다. 주주들이 회사 이익을 올린 건 ‘당신이 아니라 우리‘(Not you, but We)라고 했더니 오히려 화를 내기도 했다. 또한 이익을 부풀리기 위해 분식회계를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잭 웰치는 2002년 부인과 진흙탕 이혼 소송으로도 유명하다.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의 편집장으로 그를 인터뷰하러 온 24세 연하 수지 웨틀로퍼와 사랑에 빠지면서 부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이혼 위자료를 책정하는 과정에서 법원에 제출하는 자료를 통해 잭 웰치의 수입과 재산이 낱낱히 공개되었다.

퇴직을 하고난 뒤에도 그는 맨하튼 고급아파트 사용, 전용비행기 사용등 GE로부터 어마어마한 특전을 계속 받고 있었다. 그가 2002년 버는 돈은 세금을 빼고도 16억원이 넘었으며 한달 식대는 천만원, 한달 옷값만 2천만원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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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기술 번역작업 중 수집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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