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속 단어 - 새다운 새
지금 한번 "빨간색"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자, 이제 오렌지빛이 나는 빨간색을 떠올려보세요.
또, 보랏빛이 도는 빨간색을 상상해 보세요.
물론 오렌지빨강이든 보라빨강이든 빨간색이라고 부를 수 있갰지만 "진짜 빨강"과 다르죠? 이처럼 우리 마음 속에는 빨간색다운 빨간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개"는 어떤가요? "개"하면 떠오르는 진짜 개, 개다운 개는 제 생각에 진돗개나 셰퍼드입니다. 비글이나 페니키즈는 개라고 부르긴 해도 개답지 못한 개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판단이 개인적인 취향과는 아무 상관없이 우리 머릿속에 일관되게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오렌지빨강이나, 비글을 더 좋아한다하더라도 빨강, 개 하면 떠오르는 전형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30년 전 미국 UC Berkeley 심리학과 교수인 Eleanor Rosch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20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furniture" "fruit" "vegetable" "bird" "capenter's tool" "clothing"과 같은 단어의 마음 속 전형을 조사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전형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한 예로 새에 대한 전형을 조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거의 모든 학생이 울새나 참새를 새의 전형이라고 보았습니다. 앵무새, 꿩, 신천옹, 큰부리새 다음에, 올빼미, 다음에 펠리컨, 펭귄, 맨 아래 타조 에뮤가 있었습니다. 박쥐는 아예 새로 간주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실험은 미국 전역에 걸쳐 오랜기간 반복적으로 실시되었음에도 그 결과는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문화와 환경이 다른 집단에서는 이러한 마음속 전형이 약간씩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새"라는 단어를 위의 도표처럼 연상하시나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연구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clothing"을 보통 "옷" 또는 "의복"이라는 말로 번역을 합니다. "옷"이라는 말에 여러분은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아래 물건들을 "옷다운 옷" 순서대로 한번 나열해보세요.
잠옷, 스커트, 셔츠, 귀마개, 신발, 앞치마, 장갑, 드레스, 스타킹, 수영복, 넥타이
미국인들은 "clothing"하면 이런 것들을 떠올린답니다.
셔츠-드레스-스커트-잠옷-수영복-신발-넥타이-스타킹-장갑-앞치마-귀마개
↑ 긁어보세요.
여러분도 미국인과 비슷한 답이 나왔나요? 우리가 번역할 때 단어의 뜻을 그대로 옮겨도 읽는 느낌이 달라지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마음속 전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세밀한 심리학적 요소까지 고려하여 번역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번역자들은 좀 더 독자들이 혼동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예컨대 어느 소설을 읽다가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합시다.
"길을 가는데 개짖는 소리가 들렸다."
"골목에서 개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이 때 여러분은 진돗개가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치와와가 떠오르시나요? 예컨대 어떤 문화에서 "dog"이라는 말의 전형이 치와와라고 한다면, 이걸 그냥 "개"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을까요?
또한 "vegitable"을 "야채" 또는 "채소"라고 번역하죠. 그럼 여러분들은 "야채다운 야채"를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야채에는 여러가지가 있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마도 배추, 상추, 양파, 마늘... 같은 것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요? 미국인들은 "vegitable"이라는 말에서 무엇을 떠올릴까요?
pea콩-carrot당근-cauliflower양배추-oninon양파-potato감자-mushroom버섯...
콩이 가장 야채다운 야채라는 것이 좀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이는 기본적인 식생활의 차이 때문이겠죠.
번역을 할 때는 이처럼 문화적/심리적 판단이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