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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

 세상살이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면 붓다가 된다고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린 결론 중 하나, 사는 것은 곧 포기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어릴적 꿈꾸던 수많은 가능성을 하나씩 하나씩 포기하는 법을 배우며 나는 오늘 이렇게 살아 남았다. 나는 얼마나 더 포기할 수 있을까?

주몽, 고구려, 그리고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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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주몽》 많이 보시나요? 요즘 제가 가장 열심히,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물론 고증의 어려움이 있기는 하겠지만, 드라마에 부여/고구려의 복식과 생활양식이 너무 중국풍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상명대학교 중문학과 김경일교수는 2001년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에서 우리문화의 원형은 만주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바닥에 앉고 눕는 구들장문화(온돌)와 야채를 절여 발효시켜 먹는 문화(김치/된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특한 언어"는 모두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지역, 즉 고구려의 특색이었죠. 이는 중국 한족문화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문화적 요소들이며 코리아를 코리아답게 만드는 요소들이죠. 성리학을 국시로 한 조선의 성립 이후 우리 학자들은 소중화사상에 빠졌고 우리 민족의 원류를 중국한족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수백년 지속되면서 우리는 정말 기형적이고 이상한 역사교과서를 갖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공자가 우리민족을 東夷라고 지칭했는데, 이걸 우리 교과서는 "동쪽의 큰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는 말도 안되는 억지해석을 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東夷는 말그대로 "동쪽에 사는 오랑캐"라는 말입니다. 우리민족이 바로 오랑캐입니다. 오랑캐에 대한 수많은 억지와 왜곡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오랑캐다운 기상을 억누르며 정적으로 살도록 강요받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대륙을 호령하던 기상이 어디 가겠습니까? 세계를 뒤흔드는 월드컵응원에서 보듯이 우리 안에는 피끓는 열정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어딜봐서 수천년 농사만 짓고 살아온 사람들로 보입니까? (물론 우리나라는 남방의 농경민족과 북방의 기마민족,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민족이 혼합되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무력을 소유한 기마민족이 늘 지배층을 차지하고 문화를 선도했습니다.) 북방의 수많은 오랑캐들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패권문화의 공세에 밀려 역사속으로 사라져갔습니다. 거란, 여진, 말갈, 돌궐, 흉노....

모든 텍스트는 번역의 번역의 번역이다

 Every text is unique and, at the same time, it is the translation of another text. No text is entirely original because language itself, in its essence, is already a translation: firstly, of the non-verbal world and secondly, since every sign and every phrase is the translation of another sign and another phrase. However, this argument can be turned around without losing any of its validity: all texts are original because every translation is distinctive. Every translation, up to a certain point, is an invention and as such it constitutes a unique text. - Octavio Paz, Taduccion: literatura y literalidad (Barcelona: Tusquets Editor, 1971), p.9 모든 텍스트는 그 자체로서 독특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텍스트의 번역이다. 어떠한 텍스트도 완전한 원작이라 할 수 없는데, 이는 언어 자체가 본질적으로 이미 하나의 번역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언어는 비언어세계에 대한 번역이며, 둘째로 어떠한 기호든 글귀든 또 다른 기호와 글귀에 대한 번역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거꾸로 뒤집어도 그 논리적 정당성을 고스란히 유지한다. 다시 말해, 모든 텍스트는 그 자체로서 원작이라 할 수 있는데, 번역은 모두 제각각 고유하기 때문이다. 모든 번역은 어느 정도까지는 하나의 발명품이고, 그 자체로서 하나의 고유한 텍스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