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민주당을 위하여
5.31지방선거가 이제 눈앞에 다가왔다. 결과는 물론 예상했던 대로다. 온통 시퍼런 남한지도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이 상태로는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할 것이 뻔해보인다. 4.19 이래로 우리 국민, 시민들이 피로써 쌓아온 민주주의의 열매를 이제 고스란히 수구 기득권세력 한나라에게 빼앗기게 생겼다. 참으로 암담한 현실이다.
민주화 세력이 원하는 것은 반한나라당이다
나는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했다. 노사모는 아니었지만 희망돼지에 "거금" 5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내가 그 당시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냉정히 되돌아보면, 결국 수구세력들이 다시 집권하는 것을 막아낼 수 있는 가장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노풍이든 광풍이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차근차근 쌓아온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 세력이 재집권하는 상황을 막아내는 것이 당면목표였다.
노무현은 당선과 동시에 정치개혁을 선언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구도를 깨고 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을 깨고 전국정당을 기치로 열린우리당을 세웠다. 물론 올바른 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시작되었다. 어떠한 지역기반도 거부하는 상황에서 집권당으로 다수의석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역, 다양한 계층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떡고물을 줘야 했다.
영남표를 얻기 위해 노무현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배신하고 대북송금특검을 실시했다. 전북표를 얻기 위해 천인공노할 새만금간척사업을 밀어부쳤다. 충청표를 얻기 위해 행정도시를 강행했다. 한편으로 부동산에 대한 세금을 높이는 작업을 하면서도 반노동자적인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펼쳤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은 사실 자신들의 목표대로 지난 2년동안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노선은 결국 어느 누구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못하는 실패로 이어질 것이 뻔한 길이었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정치실험은 실패했다
이상은 높았지만 현실에서는 무능한 정권일 뿐이다.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는 예견된 것이었다. 박근혜테러나 낮은 투표율을 탓한다면, 대선에서는 판세가 다를 것이라고 자위한다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은 그나마 남아있던 민주세력의 믿음을 철저히 배신하는 것이다. 적어도 국민들이 "민주세력에게 권력을 줬더니 나라 말아먹었다"는 인식을 하게끔 만들게 해서는 안된다. 김대중대통령은 그래도 대한민국이 발전하고 있다는 깊은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노무현대통령"도 존재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정치가 정녕 지역구도를 벗어나 정책구도로 바뀐다면 참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또한 지역구도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지역이라는 변치않는 지지세력이 뒷받침하고 있다면 과감한 개혁정책도 밀어붙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한나라당이 아무리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성추행을 하고 부자편만 들면서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은 바로 영남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지지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 아닌가?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정치실험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우리나라의 정치구도가 무엇인지를 지난 2년 간 몸소 실천을 통해 증명해보였다. 노무현이 전국정당이 가능하다고 했을 때 나 역시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 그것은 먼 일이다. 아마도 민주노동당이 국회과반수의석을 차지할 때나 가능할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임무는 정치구도개혁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는 것이다. 실제로 며칠전 열린우리당의 당직자가 말하길, 어느 누구를 찍어도 좋으니 한나라당 싹쓸이만은 막아달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진실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합당만이 살 길이다
그렇다면 결국 해답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당대당 통합이다. 그밖의 여러 개혁세력을 모아 반한나라당 연합을 짜야 한다. 노무현은 탈당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친노계열들은 모두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 민주세력의 새로운 판을 만들고 새로운 인물을 대선후보로 내세워야 한다.
노무현은 이미 대통령탄핵이라는 거대한 정치폭풍을 통해 정치판의 인물들을 일거에 물갈이해버렸다. 예전 민주당의 낡고 퇴락했던 인물들 역시 이때 모두 정계에서 떠밀려 나갔다. 오늘날 민주당의 인적구성은 다르다. 또한 소수정당일 뿐이지만 여전히 강력한 지역기반을 갖고 있으며, 성공한 대통령으로서 김대중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갖고 있다. 당대당 통합은 열린우리당의 손해가 아니다. 더욱이 경선을 통해 대선후보를 뽑는다면 열린우리당의 뛰어난 인재들이 다시 당권을 잡을 것이 뻔하지 않은가?
전국정당, 정책정당, 진보정당의 임무는 민주노동당에게 맡겨두길 바란다. 진정으로 정치개혁을 원한다면,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는 동시에 좌파기수로서 민주노동당이 클 수 있는 정치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제도권내 개혁정당이 할 일이다.
앞으로 대선은 1년밖에 남지 않았다. 만약 다음 정권을 수구세력에 넘긴다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선의는 역사적으로도 냉혹한 평가를 받게될 것이다. 자신들이 어떻게 집권당이 되었는데, 어찌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나라망하지 않는다"는 무책임한 망발을 할 수 있는가? 자신의 존재이유를 냉정히 되돌아보고 지방선거이후 열린우리당은 정계개편과 개헌작업에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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