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대학에 들어가기 전 공장을 다닐 때, 나도 정주영처럼 큰 돈을 버는 재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던 적이 있다. 서울역이나 영등포역 앞에 갈 때마다 리어카에서 파는 자기계발서들을 사서 읽었다. 미국책들을 날림으로 번역한 책들이었다. 30살, 40살 50살에 이룰 업적을 계획했고, 그때마다 소유한 자산을 액수로 써놓았다.
얼마전 넷플릭스에서 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에서 나온 것처럼 우리 세상에 "멀티버스"가 존재한다면, 그 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상상한다. 물론 그런 상상을 진지하게 한다면, 현실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뜻일게다. 영화 속 에블린이 그렇고, 내가 그렇다.
대학을 가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다면, 나의 처지와 상황을 좀더 주체적으로 받아들였다면, 좀더 행복한 삶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 앞에 펼쳐진 선택지가 너무 많았다. 물론 그 뒤에도 수많은 선택을 했고, 그 결과로 지금 이 상황에 도달했을 것이다.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얼핏 보기에 좋은 것 같지만,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남의 시선과 시류에 휩쓸리기 쉽다는 뜻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거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할 때 비로소 목숨을 건 성장과 발전이 시작된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의 가능성을 줄여나간다. 이제 선택지는 매우 좁혀졌다. 마지막 하나가 남을 때까지 좁혀갈 것이다.
선택하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다. 무수한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선택지는 포기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무수한 선택을 했다는 뜻은, 나에게 열려있던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갓태어난 아기들이 사랑스러운 것은, 앞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둘 나이를 먹으면서 선택지는 줄어든다. 나의 길이 아닌 것은 포기한다. 천진난만하던 얼굴이 하나둘 흠집이 가고 구겨진다.
이제 나는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
멀티버스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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