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여형사 다모
월요일 밤이 이렇게 허전한 것은 긴 추석 연휴가 끝난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도 《조선여형사 다모》가 더이상 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TV드라마를 별로 보지 않지만 우연히 첫방송 매화밭 칼싸움 씬에 끌려 《다모》를 보기 시작하였다. 초반의 긴장감 넘치고 빠른 구성은 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후반부에서는 조금 억지스러운 극전개가 눈에 띄기도 하였다.
이 드라마는 크게 장채옥을 중심으로 장성백과 황보윤이 대립하는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삼각관계의 애틋한 사랑과 갈등이 주된 감동을 자아낸 스토리 라인이었다.
장재모와 장재희는 남매지만 아버지는 관군에 의하여 사형에 처해지고 집안은 몰락하는 바람에 헤어진다. 장재모는 관군을 피해 달아나지만 장재희는 사로잡혀 노예가 된다.
장성백은 민중들을 이끄는 두령이 된 후에도 "누이를 지키라"는 아버님의 말씀을 있지 않고 재희를 찾는다. 또한 두령으로서 그가 지켜야 할 대상은 민중이다. 여기서 그의 누이(채옥)는 곧 "민중"과 오버랩 된다.
황보윤 역시 불완전한 신분으로써 "체제 내에서" 계급상승을 꿈꾸는 야심가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정의감이 넘치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다. 실제 상황에서도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어쨌든 드라마에서는 있을 법한 인물이다. 그는 채옥을 가르치고 자신의 수하로 쓴다. 이 역시 깊은 애정이 밑바탕이 된다.
장성백은 채옥에게 말한다.
산채(백성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에서 정을 나누며 함께 살자
황보윤은 채옥에게 말한다.
백정으로 살아도 좋으니 (지금 이 불평등한 세상을 인내하며) 나와 같이 살자
장성백과 황보윤의 대립은 체제혁명과 체제순응의 대립이다. 민중은 체제 내에서 소극적인 편안함을 즐길 수 있지만 궁극적인 해방을 맛보기 위해서는 체제에서 벗어나는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당신이 채옥(즉, 민중)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언제라도 전율이 넘친다. 굳이 거창한 정치적, 의식적 상황을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러한 문제에 부딪힌다. 사회체제는 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나의 삶에 간섭한다. 개인에게 주어진 환경, 즉 운명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철로 된 갑옷을 입고 있으면 안전하다. 하지만 몸이 계속 자라는 데도 갑옷은 그대로여서 오히려 몸을 억압하는 상황이 된다면 갑옷을 벗어던져야 할 것이다. 채옥이 자신을 나무에게 비유하는 대사에서 황보윤이 이런 갑옷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나으리처럼 저를 자유롭게 한 분도 없고, 저를 구속한 분도 없습니다. 진정 저를 아끼신다면 정원의 한그루 나무가 아니라, 제가 숨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 드라마는 혁명에 관한 한편의 은유적 서사시이다. 길들여진 갑옷과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중의 몸부림이다. 채옥이 장성백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이다. 그래서 마지막의 극적인 반전-채옥이 황보윤을 버리고 장성백에게 갔다가 다시 되돌아 오는 장면, 더 나아가 장성백을 죽이려 끝까지 달려든다는 설정-은 너무도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워 보였다. (물론 제대로 전개를 해나갔다면 극전개가 더 무거워져 TV드라마로서는 감당하지 못하는 결론이 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소재와 인물 구도는 매우 신선하였고 이 정도 이야기 전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TV 드라마의 진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7주간 나에게 설레임과 흥분을 주었던, 정말 재미있는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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