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요한 열린우리당 그리스도 민주노동당
2004.4.12.월요일
딴지 투고단
나는 노사모 회원도 아니고 열린우리당의 당원도 아니고 민주노동당의 당원도 아닙니다. 하지만 한때 열린우리당이 되기 전의 유시민씨의 개혁국민정당에 진성당원이 될 생각은 있었습니다만, 생각만 하다가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거봐! 심정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잖아?"라고 항의한다면 할말 없습니다.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야3당과 마찬가지로 열린우리당도 공천의 잡음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야3당에 비할 바 없이 양심적인 개혁인사들이 훨씬 많음을 알고 있습니다.
해서 이제 제가 제목에서 얘기했던 것을 여러분들에게 풀어드릴까 합니다.
세례자 요한 열린우리당
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가 곧 올 것을 알리고 그 길을 예비하는 예언자 역할을 합니다. 복음서에서 자신이 직접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물로써 세레를 베풀지만 내 뒤에 오실 분은 성령과 불로서 세례를 베풀 것' 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에게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에게 물로써 세례를 받습니다. 그들은가진자, 못가진자, 권력가, 율법학자등등 계층과 신분이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사람들까지 세례를 받으러 오자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올 그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 그만큼 세례자 요한은 정치와 종교가 불가분의 관계이던 당시 이스라엘에서 기득권을 누리며 민중을 억압하던 이들에게 거침없이 비판과 질타를 던지던 사람이었습니다.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사고를 하고 있습니다만, 이걸 이념적 차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괜한 색깔 논란을 일으킬까봐서 입니다. (벌써 일어났지만.) 상당수의 의원들이 한나라당의 대다수 의원들이 걸어 온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탄핵사태이후,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독사의 족속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열린우리당에 입당의사를 밝혔고 그들 중 대다수가 열린우리당의 당원이 되었습니다. 성희롱혐의가 드러난 이와 어제까지 자기 지역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주구노릇을 하던 이들이 이제는 열린우리당의 당원이 된 것입니다. 그중 몇몇은 낙하산 공천으로 공천 잡음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태오 복음에 나타난 요한의 말을 다시 봅시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써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써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회개를 위해 세례를 베푸는 것이 임무인 요한은 세례 받으러 온 이상 베풀지 않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물로 세례를 주는 한계입니다. 열린우리당 역시 개혁을 위해서는 국회에서 쪽수가 필요함을 절감하고 세를 불리기 위해서 불가피한 포용을 했다고 봅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어떻게 세를 불리겠습니까? 현재 정치구도에서는 그 지역의 유력자를 자기당으로 끌어들여야 그 지역의 표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열린우리당의 한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세례자 요한이 물이 아닌 불로 세례를 준다고 했다면 누가 그를 찾아가 회개하는 시늉이라도 했겠습니까? 그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가 올 것이라고 미리 예고해 줄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가 나오기도 전에 세례자 요한이 십자가형으로 죽었겠지요. 열린우리당도 이와 같습니다. 요한의 말을 다시 봅시다.
그 분은 손에 키를 드시고 타작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예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루한 지도부의 전횡과 비리에 물든 민주당을 비판하고 분당한 이들과 한나라당의 차떼기에 환멸을 느끼고 탕당한 이들과 기존정치의 부패를 비판하며 진성당원으로 운영하는 개혁국민정당이 합쳐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으나 부패한 정치권의 탄핵가결로 대통령이 의회에서 탄핵당함으로써, 헤로데의 음행으로 비판하다가 목이 잘려 죽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과 같다고도 볼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민주노동당
이합집산을 되풀이하고 당리당략을 위해서는 정당강령을 무시하고 야합하는 기존 정치권에 비하면 열린우리당도 지도부와 중진들의 정체성이 뚜렷하지만, 민주노동당은 확실히 정체성이 명확하며 당의 기조 탓인지 썩은 정치에 물들지 않았고 올곧게 자기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물로써 세례를 베푼 열린우리당과는 달리 민주노동당은 아예 처음부터 불을 갖다 놓고 쭉정이와 알곡을 가렸습니다.메시아는 과감하고 단호합니다. 복음서 속의 예수님은 사랑을 얘기하고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을 곳곳에서 드러내지만 전통과 율법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억압하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주저함 없이 질타하고 단호하게 비판하고 계십니다. 그릇된 것과의 어정쩡한 타협과 봐주기는 에수님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볼 때 민주노동당이 그간 걸어온 길이 이와 같다고 한다면 과언일까요? 그동안 민주노동당은 수구세력과 언론권력에 의해서 빨갱이들의 집합체로, 좌경세력들의 용인할 수 없는 정당으로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으로 왜곡되어 왔습니다.
바리사이파와 대사제들도 예수를 유대땅을 돌며 사람들을 선동해 사회혼란을 부추기고 하느님을 모독했다고 거짓죄명을 씌워 죽였습니다. 배가 고파서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고,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달라고 말한다고 좌익용공으로 낙인찍었듯이 말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기득권자들이 보기에 싫고 그들이 가진 것을 내놓기 싫을 때는 언제나 누명을 씌워 사회적인 본보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예수와 민노당도 그렇게 그들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지금의 열린 우리도 이런 맥락에서는 친북좌경세력으로 매도당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한 메시아에 대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찾아다니고 갈구하지만 메시아가 제시하는 가르침에는 부담감을 느끼며 거리를 두려합니다. 오로지 메시아가 베풀 기적만 바랄 뿐이죠. 더 이상 기적을 베풀지 않으면 마음이 돌아서고 의심을 하고 죽도록 내버려 둡니다.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을 대하는 태도 또한 이와 같다고 봅니다. 특히 노동자들이 그렇습니다.
민주노동당은 기존 정당과는 정책과 입장차이가 확연하고 명확합니다. 그동안 서민대중을 위한 정책을 꾸준히 제시해 왔지만, 정작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줘야 할 근로자들과 농민, 서민들은 지역장당을 지지해 줬지 민주노동당을 지지해 주지 않았습니다. 16대 총선에서 울산 지역에서 민노당 후보가 한 명도 당선되지 않은 것이 그 예입니다. 아시다시피 울산은 대한민국에서 노동자가 가장많은 도시입니다. 그런 곳에서 노동조합에는 동참하면서도 총선에서는 민주노동당이 당선되지 않았습니다.
메시아의 기적을 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수동적으로 기적을 당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메시아가 제시하는 가르침을 따르려면 스스로의 노력이 있어야 하고 결심과 희생을 해야 합니다.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와야 한다."고 에수님이 말했듯이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특히 노동자들은 아직 그럴 결심과 노력을 할 자신이 없는 겁니다. 그저 "나를 뽑아주면 이것 저것 다 해준다."식의 기적같은 말에 더 현혹되고, "저 넘은 빨갱이야. 저넘이 당선되면 나라가 망해!" 같은 단순히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수동적인 구경거리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2000년전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종처럼 사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서일까요? 아니면 메시아의 과감하고 단호한 가르침에 호응하기에는 자신들을 다스리고 부리는 자들의 비리와 부패에 이미 동참한지 오래되었기 대문일까요? 아니면 대한민국에서 실제로는 부르조아 노동자들이 많아서일까요? 그럴만큼 자신들을 중산층으로 착각하거나 자부하는 서민들이 많아서일까요?
전 국민의 30%도 안되는 인구가 중산층과 부유층이며, 나머지 80%에 가까운 인구가 서민이고 빈민인 나라에서 민주노동당과 같은 정당이 지금까지 국회에 입성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바리사이파이자 대사제인 한나라당
바리사이파는 사두가이파, 대사제들과 함께 당시 이스라엘의 기득권층들로써 막강한 정치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율법과 경전해석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하면서도 민중들에게는 철저하고 비인간적인 율법의 준수를 강요했습니다. 심지어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의 계명까지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오류를 정당한 듯 퍼뜨렸으나 예수는 그들의 오류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계명훼손을 직접적으로 질타하고 있습니다. (마르코복음 6장 8절~13절)그리고 바리사이파와 대사제들은 로마 지배 하에서 로마에 협력하면서 기득권을 고수했고 자신들을 공격하는 자는 누구든지 이방의 신을 숭배한다든지 또는 율법에 반한다든지 하는 어거지 죄목을 씌웠습니다. 또한 자신들을 질타하는 세례자 요한을 두려워했고 예수에게는 적개심을 품었으며 결국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함께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했습니다.
이런 바리사이파의 모습은, 일제지배 하 각 지역에서 수십년간 면장과 군수를 하며 친일파로써 기득권을 쌓아왔고 해방 후 오늘날까지 지역 토호로써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친일 전력이 있는 자신들의 집안내력을 은폐하기 위해서 남북분단 상황을 이용해 독립운동가를 좌익, 빨갱이, 사회혼란세력으로 몰아 숙청했고, 한국 정치의 핵심에 입성해서는 독재정권에 의탁했으며, 정적들과 비판세력을 친북반미세력으로 매도하며 기득권 수호에 열중하는 현재 한나라당의 모습과도 매우 닮았습니다.
또, 모든 국가적 위기의 책임은 자신들을 비판하고 자신들 이익에 반하는 단체와 정권과 반대당과 대통령에게 있다고 책임전가에만 여념이 없습니다. 이는 예수 당시 자신들의 위선과 오류를 은폐하기 위해 거짓 죄명을 씌워 예수를 희생양으로 만든 바리사이파와 대사제들의 모습과도 너무나 흡사합니다.
과거 독재정권의 거대여당들, 즉, 박정희의 공화당, 전두환 노태우의 민정당, 그 후신인 신한국당은 한난라당의 전신이며 역사입니다. 당대 폭압적 권력에 동참하며 법률을 자신들 개인과 권력에 유리하게 적용하고 만들면서도 인권유린에는 눈을 감고 독재정권 아래 배를 불린 한나라당의 모습과 당시 이스라엘의 바리사이파와 대사제들의 모습은 다르지 않습니다. 당의 대표 역시 친일파의 딸이고 독재자의 딸이며 선거유세에서 독재자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한나라당이 변한 것이 있다면 언론 홍보용 천막당사와 박근혜라는 친일파와 독재자의 딸로 대표가 바뀌었다는 것 뿐입니다. 용서해 달라고 사죄한다는 것은 차떼기 한 것을 사죄한다는 것이지 탄핵에 대해 사죄한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때문에 개혁공천 49%라면서도 탄핵에 동참한 전체 의원의 70% 이상이 재공천됐던 겁니다. 개혁공천 49%는 국민들 눈가리고 아웅한 숫자놀음에 불과했던 겁니다. 실세중진들이 대부분 출마했고, 친일특별법에 제동을 건 의원들도 그대로 출마했습니다.
그들이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인물들이기에 재공천된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단 말입니까?
율법학자 민주당
자신들은 민주화 세력이며 전통야당이다, 518정신을 계승했다 등의 말은 하면서도 하는 짓을 보면 전혀 민주화 세력같지 않고 518정신을 계승한 것 같지 않은 민주당은 어찌보면 성전 뜰의 상인에 비견할 수도 있겠지만 더 보고 있으면 율법학자에 가깝습니다.이미 언급한대로 당시 이스라엘에서 율법학자는 대사제와 함께 경전해석의 전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의 경전해석과 율법 적용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이단이며 사도로 매도되었습니다. 예수를 죽일 모의에 가담한 이유도 예수가 율법학자들을 율법에 쓰인대로 이치에 맞게 공박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치에 맞게 말하고 진실을 밝히려 들면 유대인들을 선동한 이단으로 내몰고 빨갱이 친북세력으로 매도하는 기득권자들의 두뇌구조는 시공간을 초월해 변함이 없나 봅니다. 이건 바리사이파 한나라당과 뒤에 말할 성전뜰의 상인 자민련에게도 공히 해당됩니다. 루가복음 21장 46절~4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중략.....그리고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도 기도만은 남에게 보이려고 오래한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그만큼 더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마태오복음 23장에도 율법학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23장 4절)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주기를 바란다.(23장 7절)독재에 항거한 전통야당으로써 518정신을 계승했다고 선거유세에서도 떠들어대는 지금의 민주당은 그동안의 행적을 본다면 518 영령들의 혼을 등쳐먹은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한나라 자민련과 함께 개혁입법에 나몰라라했고 방탄국회에 동참했으며, 그러면서도 자신들을 민주화세력의 구심체니, 518정신을 계승했느니 하면서 민중들의 희생을 훔쳐 자신들의 것인양 하면서 내보이고 대접받으려고 갖은 애를 다 쓰고 있습니다. 삼보일배에 단순히 혹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추미애 선대위원장아 광주거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삼보일배를 하면서 지역정서에 기댔지만 조순형을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의 어느 누구도 광주거리에 있지 않았고, 지도부가 어떤 입장인지도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동시에 추미애가 지도부도 꿈쩍않는 상황에서 저렇게 혼자 용을 쓴다는 것은 차후 당내에서 자신의 목표와 야망을 위한 힘겨운 투자라고 봐야 합니다.
즉, 지도부는 민주당 구원의 짐을 추미애에게 메어주고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 반사이익을 선거에서 얻어 챙기는 것이고 추미애는 당내 입지에 대한 힘겨운 투자를 한 후 광주시민과 국민에게 고행의 사죄를 했다는 인사를 받으면서 지역정서와 당내에서 선지자로 불려지고 대접받게 될 것이란 겁니다.
이 두가지 이외에 민주당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탄핵은 대통령이 선거법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모든 것은 법대로 했다고 자신들은 정당했다는 것이 아직까지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기본 입장입니다. 추미애가 삼보일배하며 사죄한다면서도 탄핵에 대해서 사죄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함 없이 민중들에게 율법을 그대로 적용하면서도 자신들은 편리한 율법의 해석으로 형벌에서 빠져나오던 율법학자들처럼, 민주당은 의원 특권과 법규의 유리한 해석으로 방탄국회에 동참하면서도 교통법규 위반으로 사형 언도(선거법 위반으로 탄핵)를 주도한 최초의 정당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전 뜰의 상인 자민련
이스라엘의 율법에 의하면 야훼 하느님을 모신 성전은 매우 경건한 장소로써 경박하고 상스러운 행위를 해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예수 당시 예루살렘의 성전 안에는 상인들이 자판을 벌여놓고 성전에 번재물로 바칠 비들기를 팔았으며, 환전상들이 앉아서 돈을 바꿔줬습니다.문제는 성전에 들어오는 이들에게 밖에서 가지고 들어온 비둘기는 번재물로 바치지 못하게 하고 성전 안에서 상인들이 파는 몇갑절이나 비싼 비둘기만 번재물로 바칠수 있게 했다는 겁니다. 성전 안에서 파는 비둘기만이 축복받은 번재물로써 하느님께 성스럽게 봉헌될 수 있다는 거였죠.
이렇게 해서 잇속을 챙기는 자들은 당연히 성전 안에서 번재물 판매의 독점권을 가진 상인들과 그들과 결탁한 대사제들이며, 대사제들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 안에서 행해지는 이런 불경스런 행위에 대해서 함구하고 묵인했기 때문입니다.
자민련을 왜 성전 뜰의 상인에 비유했는지 아직 감이 안 잡히시나요?
유신의 오른팔이었던 사람이 총재로 있는 자민련은 보수를 팔아먹고 사는 정당입니다. 자기들만 진정한 보수며 건전보수의 대표자라고 자처합니다. 과거 독재정권에 기반하고 여태껏 수구정치에 물들어 지역주의에 기대고 수구정치를 이끌다시피한 사람들이 건전보수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 유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있는 보수는 보수가 아니라 사도라는 얘기인 거죠. 에수 당시 성전 뜰의 상인들이 파는 비둘기만 번재물이 될 수 있다고 이스라엘의 기득권자들이 민중을 혹세무민했듯이 말입니다.
사실 성전의 상인들이 파는 비둘기가 특출나게 예쁘고 살이 오르지는 않았습니다. 남들이 가질 수 있는 똑같은 것을 성전에서 자신들이 판다고 웃돈만 더 얹어 팔았던 거죠. 대사제들의 비호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사람들의 묵인 하에서 아주 편한 방법으로 쉽게 돈을 벌수 있었습니다.
자민련 역시 아주 편한 방법으로 생존을 유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들에겐 보수가 무엇인지, 진정으로 보수정당이 되려면 무엇부터 바꿔야 하는지는 안중에 없습니다. 사실 보수라는 단어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하기 싫을 겁니다. 성전 뜰의 상인들이 자신들이 팔아먹는 비둘기에 특별한 성스러움이 있는지를 고민하지 않았듯이 말입니다.
그저 그 보수라는 말을 팔아서 자기 지역에서 표 좀 얻어서 국회에서 의석을 몇개라도 차지해 원내에 진출해서 지금껏 지켜온 기득권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한 것입니다.
대사제 가야파 박관용 국회의장
바리사이파와 대사제들과 원로들이 대사제 가야파의 관저에서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고 예수를 잡아다가 대사제를 앞세워 법정에 세웠으며 본디오 빌라도에게 보냈듯이 야3당은 박관용 국회의장을 앞세워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습니다. 더욱이 박관용 국회의장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향해서, "이건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자초한 일입니다. 자업자득입니다. 자업자득!"이란 말을 반복했습니다.도대체 무엇이 자업자득이란 말입니까. 교통법규위반으로 사형을 언도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행위가 자업자득이란 말인가요? 아니면 교통법규를 위반한 것이 자업자득이란 말인가요?
이것은 법정에서 그리고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예수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람이 하느님을 모독했으니 무슨 증거가 필요하겠소? 여러분은 방금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듣지 않았소?"하며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를 외쳤고, "온 유대땅을 돌며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라고 우겨댔던 대사제들에 견줄만 합니다.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외치는 국민들.
예수는 기적을 행하여 병든 이를 고쳐주고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적 행위에서 예수님의 공통적인 말씀은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입니다.2004년 3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기적을 보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일어나 모여만든 끝이 보이지 않는 촉불집회의 행렬들을 국민들은 보았습니다. 그런 국민들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야3당의 정치꾼들이 사죄를 한다느니, 석고대죄를 하겠다느니, 삼보일배를 한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국민들 스스로가 일으킨 기적이었습니다. 과거 언제 정치꾼들이 국민들 뭐서워서 저렇게 꼬리 내리는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지금, 국민들은 석고대죄는 하지 않고 사죄를 한다는 몇마디 말과 경제를 채임지고 살려주겠다는 각서없는 말과 삼보일배에 현혹되어 있습니다. 급기야 어찌들으면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불편을 들어드리려고 한 말일 수도 있는 말을 노인폄하라 주장하는 그들에게 더욱 현혹되어 버렸습니다. 이 발언 이후 사죄한다던 야당의 정치꾼들은 순식간에 돌변하여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죄의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이 노인폄하발언 총공세에 돌입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야당의 정치꾼들의 입에서 대국민 사죄의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지금 이시간까지도 국민들은 외치고 있습니다.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라고 수없이 말했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자들은 자신들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의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 믿음은 어떤 절대자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그렇게 미혹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확신시켜줄 현실적인 절대자만 찾았던 겁니다. 그것이 자신들을 더욱 노예 수준으로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렇게 수도 없이 말했지만, 종국에 가서는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쳐댔던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바라빠는 정치적인 기적, 즉 폭력으로 그들을 로마의 지배에서 풀려나게 해줄 또 다른 기적의 메시아였고, 예수는 이미 기적의 능력이 다한 별 볼일 없고 쓰잘데기 없는 인간일 뿐이었던 겁니다. 그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던 당시 유대인들은 그렇게 또다른 메시아라고 생각되는 바라빠에게 손을 벌렸고, 대신 죄없는 예수를 죽이는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국민들. 바라빠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국민들. 거여견제론에 솔깃하며 기존 야당에게 혹하는 국민들에게 촛불집회의 기적은 이미 그들이 이룬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마치며...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약속을 지키는 것은 약자입니다. 그것 외에 약자가 강자에게 달리 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강자에게 약속은 언제든 어기고 다시 맺을 수 있는 공수표와 같은 것입니다.유권자로써 당부드립니다.
이번 415 총선에서는 강자의 마음으로 강자의 머리로 투표하시기 바랍니다. 부자가 되려면 먼저 마음이 부자여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부터 강자의 마음으로 바꾸십시오.
예수 당시 우매한 유대인들과 다를바 없는 마음가짐으로는 약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봉이냐'는 말을 때마다 내뱉을 수 밖에 없습니다.
긴글 읽느라 욕보셨습니다.
04년 4월 부산에서...
Mr. son(kra-tu@hanmail.net)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