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hoid Mary
살 만한 나라 사람들의 위험한 호들갑. 덕분에 세균은 더욱 빠르게 진화한다. 인간의 청결 지향은 더불어 사는 생물들, 특히 세균 기생충들에게 심한 배신을 당한다. ‘무균상태’는 당연히 세균, 박테리아가 손쉽게 접수할 수 있는 놀이터가 된다.
세균 진화의 예로, 장腸티푸스(typhoid;디프테리아)는 17세기까지 심각한 병이 아닌 가벼운 감기 정도로 진행되다 말곤 했는데 18세기 미국에서 발생한 장티푸스는 높은 사망률을 기록, 첫 환자 40명이 전부 이승을 떠났다. 물론 독감 에이즈 등 현대 바이러스들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청결강박의 인간과 함께 살려는 바이러스들의 안간힘이라 할 것이다.
장티푸스가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것이 밝혀진 때는 1백여년 전이다. 장티푸스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식수 공급이 급선무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주거환경이 개선되면서 장티푸스의 발병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1906년 뉴욕 근교에 거주하는 한 부유한 가족이 장티푸스에 걸리자 의사들은 의아했다. 역학조사를 맡은 의사 조지 소퍼는 처음에 이들이 먹은 음식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곧이어 이 집에 요리사가 새로 들어온 시기와 장티푸스 감염시기가 일치한다는 데 주목했다.
요리사는 아일랜드에서 이민온 메리 말론이었다. 말론은 보균자였지만 건강은 이상이 없었다. 소퍼는 말론의 과거 행적을 추적했다. 말론은 10년간 8가정을 거치면서 요리사로 일했으며, 그동안 주변사람 22명이 감염되고 1명이 사망했음이 밝혀졌다.
1907년 뉴욕시 보건당국은 말론을 강제로 병원에 격리 수용했다. ‘장티푸스 메리’라는 별명은 이 병원에서 붙여졌다. 말론은 자기는 건강한데도 왜 병원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느냐며 항변했다. 3년후 말론은 요리사 일은 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퇴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돈을 제대로 벌 수 없었던 말론은 1915년부터 브라운 부인이라는 가명을 써서 맨해튼의 한 병원에 요리사로 취직했다. 그 결과 25명의 의사·간호사·직원 등이 장티푸스에 감염됐고 그 중 2명이 사망했다.
말론은 다시 붙잡혔고, 격리돼서 죽을 때까지 23년간 홀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당시 보건당국의 감독을 받던 장티푸스 보균자는 2백명이 넘었지만 그렇게 평생 연금상태로 지낸 사람은 말론 뿐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非 앵글로 색슨에 대한 선입관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균 진화의 예로, 장腸티푸스(typhoid;디프테리아)는 17세기까지 심각한 병이 아닌 가벼운 감기 정도로 진행되다 말곤 했는데 18세기 미국에서 발생한 장티푸스는 높은 사망률을 기록, 첫 환자 40명이 전부 이승을 떠났다. 물론 독감 에이즈 등 현대 바이러스들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청결강박의 인간과 함께 살려는 바이러스들의 안간힘이라 할 것이다.
장티푸스가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것이 밝혀진 때는 1백여년 전이다. 장티푸스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식수 공급이 급선무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주거환경이 개선되면서 장티푸스의 발병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1906년 뉴욕 근교에 거주하는 한 부유한 가족이 장티푸스에 걸리자 의사들은 의아했다. 역학조사를 맡은 의사 조지 소퍼는 처음에 이들이 먹은 음식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곧이어 이 집에 요리사가 새로 들어온 시기와 장티푸스 감염시기가 일치한다는 데 주목했다.
요리사는 아일랜드에서 이민온 메리 말론이었다. 말론은 보균자였지만 건강은 이상이 없었다. 소퍼는 말론의 과거 행적을 추적했다. 말론은 10년간 8가정을 거치면서 요리사로 일했으며, 그동안 주변사람 22명이 감염되고 1명이 사망했음이 밝혀졌다.
1907년 뉴욕시 보건당국은 말론을 강제로 병원에 격리 수용했다. ‘장티푸스 메리’라는 별명은 이 병원에서 붙여졌다. 말론은 자기는 건강한데도 왜 병원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느냐며 항변했다. 3년후 말론은 요리사 일은 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퇴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돈을 제대로 벌 수 없었던 말론은 1915년부터 브라운 부인이라는 가명을 써서 맨해튼의 한 병원에 요리사로 취직했다. 그 결과 25명의 의사·간호사·직원 등이 장티푸스에 감염됐고 그 중 2명이 사망했다.
말론은 다시 붙잡혔고, 격리돼서 죽을 때까지 23년간 홀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당시 보건당국의 감독을 받던 장티푸스 보균자는 2백명이 넘었지만 그렇게 평생 연금상태로 지낸 사람은 말론 뿐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非 앵글로 색슨에 대한 선입관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추럴리데인저러스 번역작업 중 수집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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