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장이 스머프]의 정치사회학적 분석
'Socio-political Themes in The Smurfs' written by J. Marc Schmidt 번역 이덕진
이글은 www.yibeachuie.pe.kr에서 퍼와, 쉽게 읽을 수 있게 수정한 것입니다.

<스머프>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우선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을 위해 제작한 만화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다른 만화나 TV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깊이를 발견할 수 있다. <스머프>의 커다란 이야기 흐름은 몇몇 등장인물들의 모험에 있다기 보다, 사회집단과 사회 내의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작용, 사회와 외부인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나는 <스머프>를 정치적인 우화라고 생각한다. <스머프>는 맑스주의에 대한 우화이다.
하지만 <스머프>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혁명의 선전물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설사 그렇다 할 지라도, 넘쳐나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팔아먹기 위해 만드는 캐릭터 만화"보다 더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이 글은 <스머프>에 대한 편향적인 찬사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냉전시대에 맑스주의의 테제를 이렇게 재미있게 보여준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이 었는가? <스머프>는 은유와 우화라는 형식을 사용하여 어린이들에게 정치적 주제를 들려주었다. 만약 피요가 사회주의자였다하더라도, 그는 소련이나 동구의 경찰 국가의 사회주의를 추종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이상주의자였다. 그래서 스머프 마을에는 경찰도 군대도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한 경우에는-드물게- 스머프들 스스로 적과 맞서 싸울 시민 의용군을 결성할 뿐이다. 경찰 국가와는 명백히 다르다.
여기선 먼저 <스머프>에 나타난 맑스주의를 간략하게 분석한 후, 페미니즘과 동성애의 관점 또한 다뤄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 글의의 주된 핵심은 "<스머프>는 맑스주의를 표방한 우화"라는 점이다.
파파스머프는 칼 맑스Karl Marx를 상징한다. 그는 스머프의 지도자라기 보다는 그들과 평등한 인물이다. 다만 그의 나이와 지혜로 인해 존경받는다. 파파스머프는 칼 맑스처럼 수염을 길렀다. 칼 맑스의 캐리커쳐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전형적 색깔인 붉은색 옷을 입고 있다. 반면 똘똘이스머프는 트로츠키Trotsky를 상징한다. 그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파파스머프와 지혜를 겨룰 수 있는 인물이자, 사색가이다. 둥근 테의 안경을 쓴 모습은 분명 트로츠키의 캐리커쳐이다. 똘똘이스머프는 자신의 생각 때문에 종종 스머프마을 공동체로부터 왕따되고 조롱당하고 때로는 쫓겨나기도 한다. 트로츠키 또한 소련에서 추방당했다.
스머프들은 각기 다른 직업이나 성격에도 불구하고 모두 완벽하게 평등하다. 농부스머프, 편리스머프, 요리사스머프가 게으름스머프, 투덜이스머프, 수선이스머프에 비해 그 역할면에서 더욱 중요하기는 하지만 모두 평등하다. 궁극적으로 그들 모두는 '스머프'이기 때문에 직업이나 기술의 차이 때문에 더 우수하다거나 열등하다는 감정은 그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스머프마을은 폐쇄 시장의 성격을 띈다. 돈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소유물은 공공의 소유, 즉 집단의 재산이다. 모두는 노동자이며 동시에 주인이다. 스머프는 자유 시장 경제와 그에 따르는 탐욕과 불공정을 거부하며, 집단을 개인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통일체는 그 성분들의 집합보다 더 위대하다. 스머프마을은 존 레논John Lennon이 <이매진Imagine(즉, 상상하라)>에서 노래하던 정토세계이다. 그곳에는 하나의 자본이 생산 수단을 만들고, 이를 전체가 소유하고 조율하며 사용한다.
스머프들은 자신들의 명칭에 모두 '스머프'를 붙인다. 똘똘이스머프, 목수스머프, 익살스머프, 게으름스머프, 파파스머프...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다른 이를 부를 때 특징적 호칭이 아닌 '동무comrade'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집단 내의 완벽한 평등이라는 개념에 더하여 스머프들은 대개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다. 이는 공통적인 노동일상복으로써 독특한 모자와 스머프들의 파란 피부색과 결합하여, 중국 공산주의의 상징인 마오 제복을 연상시킨다.
순수한 맑스주의 노선에 따라 스머프마을에는 신이 없다. 사제스머프가 없다. 어머니자연Mother Nature과 아버지시간Father Time을 통해 은유적으로 상징되는 자연과 물리적 현상속 '실재하는' 힘만이 존재한다. 물론 파파스머프, 가가멜, 발타자르 등의 인물들이 실행하는 마법도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다수의 종교에서 그렇듯 초현실적인 기호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이 아닌, 단순한 수단일 뿐이다. (또한 스머프들은 철저한 채식주의자들이다. 절대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
시리즈 중에서 '대왕스머프'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탐욕스런 왕(그리고 자본가)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민을 착취하는 사악한 압제정부와 맑스가 공식화한 인류 평등주의에 입각한 선한 정치체제 사이의 대결을 그린다. 이 이야기에서 똘똘이스머프는 파파스머프가 없는 사이에 왕이 된다. 이를 전복시키기 위해 스머프들은 시민군을 결성하여 싸우고, 파파스머프가 돌아오자 유토피아의 질서는 회복된다. 맑스를 상징하는 파파스머프는 또한 맑스주의의 이상적인 인간형을 상징한다.
사악한 마법사 가가멜의 세계는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그는 자본가의 부정적인 면을 모두 드러낸다. 탐욕스럽고 무자비하며, 개인적인 욕구충족만이 유일한 관심거리이다. 가가멜은 자신이 자신이 속한 사회보다 자신만을 더 소중하게 여길 때 나타나는 인간형이다. 현실세계에 친구도 없이 홀로사는 미친, 늙은 운둔자이다.
가가멜이 스머프를 잡으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스머프를 잡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스머프는 작고 희귀하기 때문에 사슴과 같은 먹기 좋은 음식은 아니다. 따라서 가가멜의 욕구는 비정상적이다. 그것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참새를 잡아먹으려고 쫓아다니는 꼴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2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조그마한 사회주의라 할지라도 자본주의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마치 냉전 기간 동안 서구자본주의국가들은 포위정책을 통해 소비에트 연방과 그 위성국의 멸망을 획책했던 것과 비슷하다. 둘째, 자본가들은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대상을 상품으로 바꾸고자 한다는 의미이다. 시리즈 후반부에서 가가멜은 이제 스머프를 잡아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황금으로 바꾸려하는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궁극적인 철저한 자본가로서 가가멜은 평등이나 선 보다는 자신의 부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아담 스미스식의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가가멜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자본을 긁어모으는 모습은 극히 자연스럽다.
가가멜은 차갑고 냉소적이며 근본적으로 공허한 인간이다. 그의 삶에는 부와 재산에 대한 맹목적 추구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실리적인 합리주의가 갖는 반사회적 효과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실례이다.
가가멜이 기르는 붉은 색 고양이 아즈라엘은 가가멜의 집이 상징하는 무자비한 자유 시장 속에 사는 노동자를 상징한다. 아즈라엘은 소리를 낼 수 없다. 즉, 불평하지 못한다. 체제에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그의 임금을 교섭할 수도 없다. 아즈라엘은 주인이 주는 것을 받아 먹을 수 밖에 없다. 가가멜보다 작고 때깔이 나지 않는 아즈라엘의 모습은, 가가멜이 부르주아인 반면 그는 프롤레타리아이기 때문이다. 아즈라엘은 착취당하고 억압받는다. 주인을 위해 사냥하고, 싸우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한다. 하지만 아즈라엘은 자신의 상황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사고능력을 갖지 못한다. 마치 수세기 동안 노동자들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고용주를 위해 일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운명 속에서 고통받았던 것과 유사하다.
가가멜은 자신의 집과 그 안의 연금술 도구라는 자본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소유한다." 만약 스머프들과 같은 정치적 구조를 적용한다면, 가가멜은 더 우수한 신체, 지식, 기술이 있다하더라도 아즈라엘은 평등한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즈라엘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80년대 시리즈의 후반에 새롭게 등장한 스머플링과 같은 캐릭터의 확장은 오랜 방송으로 인한 흡입력 저하를 극복하려는 현실세계의 상업적 목적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후반에 걸친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이 소련 연방의 궁극적인 종언을 예고했듯이, 이들의 등장은 은유적으로 스머프마을의 유토피아적 조화를 위협하는 서구의 침입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또한 스머프에 접미사 'ette'를 붙여 스머페트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남성과 동등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녀는 두 번째 성性이다.앞서 나는 마을의 모든 스머프들은 평등하다고 단언했다. 어느 정도까지 이는 여전히 사실이다. 처음 스머프들은 모두 남성 뿐이었다. 하지만 스머페트의 개입했다고 해서 가부장적 질서는 위협받지 않는다. 스머페트는 정치적으로는 여타의 스머프들과 평등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이상적인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다. 그들은 노동과 외부 사회의 '공적인 영역'에 종사하지 않는다. 스머페트는 다행이도 머리가 텅 빈 허튼 계집애는 아니지만, 그녀의 유일한 관심은 예쁘게 꾸미는 것 뿐이며, 스머프들이 일을 할 때 대개 주변에 물러나 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파파스머프를 제외한 나머지 스머프들 보다는 다소 똑똑해 보인다. 스머페트는 확실히 남성의 시선 속에 존재하는 '대상'이다. 여성은 대상이고, 남성은 주체이다. 스머프들은 능동적이지만, 스머페트는 수동적이다.
스머페트에게는 유방이 없다. 스머페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고려해 볼 때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녀는 가가멜의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창조물로서 태어났다. 그녀를 만든 자본가인 가가멜은 당연히 그녀를 사용하고 처분할 수 있다. 그에게 돈을 벌기 위한 상품에 불과하다. 남성이 여성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출산이라는 여성의 중요한 역할을 부정한다. 스머페트에게 유방이 없다는 사실은 이러한 자연스런 사실을 부정하고, 가부장적인 체제에 의해 부과된 사회 규범에 순응하게 만들어 그들을 제어하려는 남성들의 시도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스머페트는 스머프를 본따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부차적인 창조물이다. 그녀는 돌로 된 심장을 가지고 있다. 기술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존재이다. 물리적인 사실뿐만 아니라 은유적으로도 그녀는 '진짜' 스머프가 아니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을 바라봐온 관점과 마찬가지로 스머페트는 사악하고 잘못된 존재이다.
어찌해야, 보다 훌륭한 여성을 만들 수 있을까? 어찌해야 사회가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로 여성을 만들 수 있을까? 하나는 여성의 모든 투지를 빼앗는 것이다. 여성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고, 남성지배사회구조가 만들어 내고 유지하는 규칙에 따르게 만든다. 예컨대, 검은 머리 여성들에게 금발염색을 시키는 것이다. 서구사회에서는 관습적으로 짙은색 머리 여성은 머리가 좋고, 금발여성은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금발을 더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더 훌륭한 여성을 만들기 위한 또다른 방법은 그녀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파파스머프가 스머페트를 '진짜' 스머프로 만들기 위해 마법을 걸자, 그녀의 외모가 아름답게 바뀌었다. 그전에는 추한 모습이었다. 여성에게 있어 못생긴 것은 나쁘고, 아름다운 것은 좋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정도 현실적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아름답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할까? 어떤 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인가? 바로 가부장적 질서이다. 남성 대 여성의 비율이 99:1인 스머프 마을은 완벽한 가부장제 사회이다. 여성이 상품이라는 생각에 이러한 사실이 덧붙여진다. 그녀는 남성(가가멜)에 의해 만들어졌고, 남성(스머프)에 의해 변화되었다. 그들의 기준에 맞춰 아름다워졌다. 스머페트는 그것에 고마워한다.
이상적인 가부장제 사회에는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스머프 마을의 성비가 50:50이라면 어떠하겠는가? 한 가지는 확실하다. <스머프>에서 본 바와 같은 유토피아는 분명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사실은 이상적인 맑스의 국가는 성性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이 평등할 때만 실제로 가능하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스머프마을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 깊이 내재하는 성차별주의에 기인할 것이다. 만약 스머프들에게 여성이 '자연스러운' 성이라면 여성이 모두 스머페트처럼 생겨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하더라도, '금발의 귀여운' 같은 고정된 외면적 틀에 기초하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상 가장 순수한 민주주의사회였다고 믿는 아테네와 같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도 여성은 "시민"이 아니었다. 아테네에서 동성애는 흔한 것이었으며 눈살을 찌푸릴 만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스머프도 스머페트와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스머페트가 덩치스머프와 편리스머프의 어린애 같은 연애 경쟁의 초점이 되기는 하지만, 마을 안 어디서도 진짜 이성애의 긴장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적인 덩치스머프와 편리스머프는 스머페트보다는 서로에게 인상을 남기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는 듯 보인다.
나는 덩치스머프, 편리스머프, 허영이스머프가 남성동성연애자의 전형이라고 믿는다. 허영이스머프는 영국시트콤인 와 같은 관습적인 연예산업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동성연애자의 모습이다. 또한 편리스머프와 덩치스머프는 에 나오는관습적 남성성으로 과대포장한 동성연애자의 전형적 모습이다. 게다가 주책이스머프와 똘똘이스머프는 동성연애자 커플의 전형을 보여 준다.
이글은 www.yibeachuie.pe.kr에서 퍼와, 쉽게 읽을 수 있게 수정한 것입니다.

1) 서론
이 글은 80년대 거의 내내 방송되었던 피요Peyo의 TV만화에 관한 내용이다. <개구쟁이 스머프>-이하 <스머프>-라는 만화를 정치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였다.<스머프>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우선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을 위해 제작한 만화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다른 만화나 TV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른 깊이를 발견할 수 있다. <스머프>의 커다란 이야기 흐름은 몇몇 등장인물들의 모험에 있다기 보다, 사회집단과 사회 내의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작용, 사회와 외부인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나는 <스머프>를 정치적인 우화라고 생각한다. <스머프>는 맑스주의에 대한 우화이다.
하지만 <스머프>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혁명의 선전물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설사 그렇다 할 지라도, 넘쳐나는 "플라스틱 장난감을 팔아먹기 위해 만드는 캐릭터 만화"보다 더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이 글은 <스머프>에 대한 편향적인 찬사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냉전시대에 맑스주의의 테제를 이렇게 재미있게 보여준 어린이 대상 프로그램이 었는가? <스머프>는 은유와 우화라는 형식을 사용하여 어린이들에게 정치적 주제를 들려주었다. 만약 피요가 사회주의자였다하더라도, 그는 소련이나 동구의 경찰 국가의 사회주의를 추종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이상주의자였다. 그래서 스머프 마을에는 경찰도 군대도 존재하지 않는다. 필요한 경우에는-드물게- 스머프들 스스로 적과 맞서 싸울 시민 의용군을 결성할 뿐이다. 경찰 국가와는 명백히 다르다.
여기선 먼저 <스머프>에 나타난 맑스주의를 간략하게 분석한 후, 페미니즘과 동성애의 관점 또한 다뤄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 글의의 주된 핵심은 "<스머프>는 맑스주의를 표방한 우화"라는 점이다.
2) 맑스주의자들의 유토피아- 스머프마을
스머프마을은 그 자체가 사회주의자들이 꿈꾼 공동체의 완벽한 전형이다. 완전히 독립적이며 토지는 개인이 아닌 전체의 소유이다.파파스머프는 칼 맑스Karl Marx를 상징한다. 그는 스머프의 지도자라기 보다는 그들과 평등한 인물이다. 다만 그의 나이와 지혜로 인해 존경받는다. 파파스머프는 칼 맑스처럼 수염을 길렀다. 칼 맑스의 캐리커쳐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전형적 색깔인 붉은색 옷을 입고 있다. 반면 똘똘이스머프는 트로츠키Trotsky를 상징한다. 그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파파스머프와 지혜를 겨룰 수 있는 인물이자, 사색가이다. 둥근 테의 안경을 쓴 모습은 분명 트로츠키의 캐리커쳐이다. 똘똘이스머프는 자신의 생각 때문에 종종 스머프마을 공동체로부터 왕따되고 조롱당하고 때로는 쫓겨나기도 한다. 트로츠키 또한 소련에서 추방당했다.
스머프들은 각기 다른 직업이나 성격에도 불구하고 모두 완벽하게 평등하다. 농부스머프, 편리스머프, 요리사스머프가 게으름스머프, 투덜이스머프, 수선이스머프에 비해 그 역할면에서 더욱 중요하기는 하지만 모두 평등하다. 궁극적으로 그들 모두는 '스머프'이기 때문에 직업이나 기술의 차이 때문에 더 우수하다거나 열등하다는 감정은 그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스머프마을은 폐쇄 시장의 성격을 띈다. 돈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소유물은 공공의 소유, 즉 집단의 재산이다. 모두는 노동자이며 동시에 주인이다. 스머프는 자유 시장 경제와 그에 따르는 탐욕과 불공정을 거부하며, 집단을 개인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통일체는 그 성분들의 집합보다 더 위대하다. 스머프마을은 존 레논John Lennon이 <이매진Imagine(즉, 상상하라)>에서 노래하던 정토세계이다. 그곳에는 하나의 자본이 생산 수단을 만들고, 이를 전체가 소유하고 조율하며 사용한다.
스머프들은 자신들의 명칭에 모두 '스머프'를 붙인다. 똘똘이스머프, 목수스머프, 익살스머프, 게으름스머프, 파파스머프... 이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다른 이를 부를 때 특징적 호칭이 아닌 '동무comrade'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집단 내의 완벽한 평등이라는 개념에 더하여 스머프들은 대개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다. 이는 공통적인 노동일상복으로써 독특한 모자와 스머프들의 파란 피부색과 결합하여, 중국 공산주의의 상징인 마오 제복을 연상시킨다.
순수한 맑스주의 노선에 따라 스머프마을에는 신이 없다. 사제스머프가 없다. 어머니자연Mother Nature과 아버지시간Father Time을 통해 은유적으로 상징되는 자연과 물리적 현상속 '실재하는' 힘만이 존재한다. 물론 파파스머프, 가가멜, 발타자르 등의 인물들이 실행하는 마법도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다수의 종교에서 그렇듯 초현실적인 기호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이 아닌, 단순한 수단일 뿐이다. (또한 스머프들은 철저한 채식주의자들이다. 절대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
시리즈 중에서 '대왕스머프'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탐욕스런 왕(그리고 자본가)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민을 착취하는 사악한 압제정부와 맑스가 공식화한 인류 평등주의에 입각한 선한 정치체제 사이의 대결을 그린다. 이 이야기에서 똘똘이스머프는 파파스머프가 없는 사이에 왕이 된다. 이를 전복시키기 위해 스머프들은 시민군을 결성하여 싸우고, 파파스머프가 돌아오자 유토피아의 질서는 회복된다. 맑스를 상징하는 파파스머프는 또한 맑스주의의 이상적인 인간형을 상징한다.
사악한 마법사 가가멜의 세계는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그는 자본가의 부정적인 면을 모두 드러낸다. 탐욕스럽고 무자비하며, 개인적인 욕구충족만이 유일한 관심거리이다. 가가멜은 자신이 자신이 속한 사회보다 자신만을 더 소중하게 여길 때 나타나는 인간형이다. 현실세계에 친구도 없이 홀로사는 미친, 늙은 운둔자이다.
가가멜이 스머프를 잡으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스머프를 잡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스머프는 작고 희귀하기 때문에 사슴과 같은 먹기 좋은 음식은 아니다. 따라서 가가멜의 욕구는 비정상적이다. 그것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참새를 잡아먹으려고 쫓아다니는 꼴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2가지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조그마한 사회주의라 할지라도 자본주의는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마치 냉전 기간 동안 서구자본주의국가들은 포위정책을 통해 소비에트 연방과 그 위성국의 멸망을 획책했던 것과 비슷하다. 둘째, 자본가들은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대상을 상품으로 바꾸고자 한다는 의미이다. 시리즈 후반부에서 가가멜은 이제 스머프를 잡아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황금으로 바꾸려하는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궁극적인 철저한 자본가로서 가가멜은 평등이나 선 보다는 자신의 부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아담 스미스식의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가가멜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자본을 긁어모으는 모습은 극히 자연스럽다.
가가멜은 차갑고 냉소적이며 근본적으로 공허한 인간이다. 그의 삶에는 부와 재산에 대한 맹목적 추구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실리적인 합리주의가 갖는 반사회적 효과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실례이다.
가가멜이 기르는 붉은 색 고양이 아즈라엘은 가가멜의 집이 상징하는 무자비한 자유 시장 속에 사는 노동자를 상징한다. 아즈라엘은 소리를 낼 수 없다. 즉, 불평하지 못한다. 체제에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그의 임금을 교섭할 수도 없다. 아즈라엘은 주인이 주는 것을 받아 먹을 수 밖에 없다. 가가멜보다 작고 때깔이 나지 않는 아즈라엘의 모습은, 가가멜이 부르주아인 반면 그는 프롤레타리아이기 때문이다. 아즈라엘은 착취당하고 억압받는다. 주인을 위해 사냥하고, 싸우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한다. 하지만 아즈라엘은 자신의 상황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 사고능력을 갖지 못한다. 마치 수세기 동안 노동자들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고용주를 위해 일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운명 속에서 고통받았던 것과 유사하다.
가가멜은 자신의 집과 그 안의 연금술 도구라는 자본을 비롯하여 모든 것을 "소유한다." 만약 스머프들과 같은 정치적 구조를 적용한다면, 가가멜은 더 우수한 신체, 지식, 기술이 있다하더라도 아즈라엘은 평등한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즈라엘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80년대 시리즈의 후반에 새롭게 등장한 스머플링과 같은 캐릭터의 확장은 오랜 방송으로 인한 흡입력 저하를 극복하려는 현실세계의 상업적 목적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후반에 걸친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이 소련 연방의 궁극적인 종언을 예고했듯이, 이들의 등장은 은유적으로 스머프마을의 유토피아적 조화를 위협하는 서구의 침입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3) 페미니즘과 스머프
모니크 위티그Monique Wittig에 의하면 남성은 직업으로 정체성을 규정하는 반면 여성은 '여성'으로 규정한다고 한다. 예컨대, 신문의 사고피해자 명단에서 "교사 한 명, 의사 한 명, 여성 한 명"이라는 표현을 가끔 볼 수 있다. 스머페트Smurfette는 스머프 마을에서 유일하게 직업이나 개성에 의해서가 아닌 성性에 의해 규정되는 유일한 스머프이다. 그녀는 성으로 인해 사회의 실재적인 구성원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사실은 만화 속에서 그녀가 가가멜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난다.또한 스머프에 접미사 'ette'를 붙여 스머페트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남성과 동등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녀는 두 번째 성性이다.앞서 나는 마을의 모든 스머프들은 평등하다고 단언했다. 어느 정도까지 이는 여전히 사실이다. 처음 스머프들은 모두 남성 뿐이었다. 하지만 스머페트의 개입했다고 해서 가부장적 질서는 위협받지 않는다. 스머페트는 정치적으로는 여타의 스머프들과 평등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이상적인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공동체의 일부가 아니다. 그들은 노동과 외부 사회의 '공적인 영역'에 종사하지 않는다. 스머페트는 다행이도 머리가 텅 빈 허튼 계집애는 아니지만, 그녀의 유일한 관심은 예쁘게 꾸미는 것 뿐이며, 스머프들이 일을 할 때 대개 주변에 물러나 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파파스머프를 제외한 나머지 스머프들 보다는 다소 똑똑해 보인다. 스머페트는 확실히 남성의 시선 속에 존재하는 '대상'이다. 여성은 대상이고, 남성은 주체이다. 스머프들은 능동적이지만, 스머페트는 수동적이다.
스머페트에게는 유방이 없다. 스머페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고려해 볼 때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녀는 가가멜의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창조물로서 태어났다. 그녀를 만든 자본가인 가가멜은 당연히 그녀를 사용하고 처분할 수 있다. 그에게 돈을 벌기 위한 상품에 불과하다. 남성이 여성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출산이라는 여성의 중요한 역할을 부정한다. 스머페트에게 유방이 없다는 사실은 이러한 자연스런 사실을 부정하고, 가부장적인 체제에 의해 부과된 사회 규범에 순응하게 만들어 그들을 제어하려는 남성들의 시도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스머페트는 스머프를 본따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부차적인 창조물이다. 그녀는 돌로 된 심장을 가지고 있다. 기술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존재이다. 물리적인 사실뿐만 아니라 은유적으로도 그녀는 '진짜' 스머프가 아니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을 바라봐온 관점과 마찬가지로 스머페트는 사악하고 잘못된 존재이다.
어찌해야, 보다 훌륭한 여성을 만들 수 있을까? 어찌해야 사회가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로 여성을 만들 수 있을까? 하나는 여성의 모든 투지를 빼앗는 것이다. 여성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고, 남성지배사회구조가 만들어 내고 유지하는 규칙에 따르게 만든다. 예컨대, 검은 머리 여성들에게 금발염색을 시키는 것이다. 서구사회에서는 관습적으로 짙은색 머리 여성은 머리가 좋고, 금발여성은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금발을 더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더 훌륭한 여성을 만들기 위한 또다른 방법은 그녀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파파스머프가 스머페트를 '진짜' 스머프로 만들기 위해 마법을 걸자, 그녀의 외모가 아름답게 바뀌었다. 그전에는 추한 모습이었다. 여성에게 있어 못생긴 것은 나쁘고, 아름다운 것은 좋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정도 현실적이다. 그러나 어떤 것은 아름답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할까? 어떤 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인가? 바로 가부장적 질서이다. 남성 대 여성의 비율이 99:1인 스머프 마을은 완벽한 가부장제 사회이다. 여성이 상품이라는 생각에 이러한 사실이 덧붙여진다. 그녀는 남성(가가멜)에 의해 만들어졌고, 남성(스머프)에 의해 변화되었다. 그들의 기준에 맞춰 아름다워졌다. 스머페트는 그것에 고마워한다.
이상적인 가부장제 사회에는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스머프 마을의 성비가 50:50이라면 어떠하겠는가? 한 가지는 확실하다. <스머프>에서 본 바와 같은 유토피아는 분명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사실은 이상적인 맑스의 국가는 성性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이 평등할 때만 실제로 가능하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스머프마을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 깊이 내재하는 성차별주의에 기인할 것이다. 만약 스머프들에게 여성이 '자연스러운' 성이라면 여성이 모두 스머페트처럼 생겨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하더라도, '금발의 귀여운' 같은 고정된 외면적 틀에 기초하지는 않을 것이다.
4) 동성연애자들의 천국- 스머프 마을
스머페트가 오기 전, 스머프마을은 남성만 있었다. 스머페트가 온 후에도 절대다수가 여전히 남성이다. 이는 스머프들이 일반적인 방법(여성에 의한 출산)에 의해 탄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스머프마을에서는 '이성애'가 규범이 아니라는 뜻이다.많은 사람들이 역사상 가장 순수한 민주주의사회였다고 믿는 아테네와 같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도 여성은 "시민"이 아니었다. 아테네에서 동성애는 흔한 것이었으며 눈살을 찌푸릴 만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스머프도 스머페트와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스머페트가 덩치스머프와 편리스머프의 어린애 같은 연애 경쟁의 초점이 되기는 하지만, 마을 안 어디서도 진짜 이성애의 긴장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적인 덩치스머프와 편리스머프는 스머페트보다는 서로에게 인상을 남기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는 듯 보인다.
나는 덩치스머프, 편리스머프, 허영이스머프가 남성동성연애자의 전형이라고 믿는다. 허영이스머프는 영국시트콤인 와 같은 관습적인 연예산업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동성연애자의 모습이다. 또한 편리스머프와 덩치스머프는 에 나오는관습적 남성성으로 과대포장한 동성연애자의 전형적 모습이다. 게다가 주책이스머프와 똘똘이스머프는 동성연애자 커플의 전형을 보여 준다.
5) 결론
나는 피요가 우화적인 만화형식을 빌어 맑스주의이상을 구현해내고자했다고 생각한다. <개구장이 스머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세계를 조명하는 뛰어난 판타지 문학이다. 그 증거는 매우 많다. 이 만화의 가장 큰 매력은 유토피아적인 이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이러한 이상세계가 현실에서는 아득할 뿐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런 세상을 꿈꾸지 않는가?Links- Smurf Official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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