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는 친일친미수구세력들의 종말을 위하여!
1973년 9월 11일 칠레 산티아고.
칠레 시민들은 아침부터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의 음성을 듣고자 이리저리 라디오 채널을 돌렸다.
아옌데는 세계최초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회주의 정권이다. 아옌데는 정권을 잡은 후에도 기득권세력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왔다. 아옌데대통령은,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곧 재신임투표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민의 44%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옌데는 재신임투표에서도 승리할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남미의 사회주의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준비해왔다. 그들은 군사혁명위원회(군사평의회)를 만들고 의장에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육군 최고사령관을 선출한다. 군의 이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아옌데는 국방장관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쿠데타 여부에 대해 조사하도록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날 아침 아엔데 대통령은 장관의 보고를 듣고 7시 30분 19명의 경호원과 함께 대통령 관저인 모네다궁에 들어갔다. 대통령의 집무실인 인디펜던스홀(독립관)은 칠레의 독립선언서가 소장되어 있는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 시간, 쿠데타에 참가한 칠레 경찰대가 탱크를 앞세워 모네다궁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었다. 아옌데는 먼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이번 쿠데타의 주모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9월 11일 10시 40분, 아옌데 대통령은 두 딸을 포함해 모든 여자들을 내보내고 대통령 경호대에게 대통령궁을 빠져나갈 것을 명령했다. 정오가 되자 쿠데타군의 공군 전폭기에서 대통령궁으로 폭탄이 투하되었다. 공군 전투기의 폭격 이후 지상군도 탱크를 앞세워 모네다궁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쿠데타군이 모네다궁에 진입하고 얼마 후 몇 발의 총소리가 났다.
모네다궁 공격을 지휘한 쿠데타군의 팔라시오스 장군은 혁명위원회에 짤막한 전문을 보냈다.
쿠테타를 성공한 우익정권은 노동자, 농민, 빈민들에 대한 전면적 탄압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인민들에게 변화에 대한 체념, 맹목적 애국주의, 실업과 가난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는 패배주의를 주입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대통령 경호대까지 밖으로 내보내고 살바도르 아옌데는 최후의 순간까지 쿠테타를 일으킨 반동세력에게 저항하다 살해당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들고 싸우던 소총은 쿠바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가 선물한 것이다. 하지만 아옌데는 쿠바식 사회주의혁명을 꿈꾸지 않았다. 그는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 역시 아옌데의 이런 생각을 부정하지 않았다. 게바라는 자신의 저서 <게릴라전>에 "다른 길을 통해 같은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살바도르 아옌데에게 동지애를 느끼며"라는 증정사를 적어 선물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칠레 민중은 물론 전세계 민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칠레의 비극만큼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오늘날 우리 노무현대통령 탄핵사건도 이와 같은 사태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극우세력-친일파로부터 시작하여 기득권을 누려온 수구반동세력-이 해방이후 민중이 피로써 일궈온 역사의 진보의 발걸음을 뒤 돌리려는 시도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성과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노무현을 대안으로 생각했지만 많은 후회를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판단을 할 시기가 아니다. 비록 흠이 있을지라도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총선'올인'전략에 맞서 우익들은 대통령탄핵에 '올인'했다. 결국 누가 이기는가 하는 판단은 국민의 손에 달려있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민중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분명한 힘을 아는 사람은 거리의 투사로 정치를 시작한 노무현이다. 분명히 한나라당, (지금의) 민주당, 자민련은 정략적 술수에는 능할지 모르지만, 결코 이러한 정치의 본질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지금은 노무현에 대한 찬/반을 논할 시기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수구냉전시대로 되돌아가는가, 아니면 부패세력들을 청산하고 이념의 스펙트럼이 더욱 넓은 시대로 '진보'하느냐를 결정하는 투쟁의 한복판에 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힘은 지금 오직 국민의 어께에 달려있다. 민중은 지금, 우익의 총공세에 총반격을 가하는 전국민적 투쟁에 '올인'해야 한다.
국민적 저항이 시들해지면, 헌법재판소는 우익의 손을 들어줄 것이 명백하다. 우리는 전국민적 투쟁을 총선까지 고스라니 이끌어가야 한다. 그럴수록 우익은 총선연기나 개헌 등을 시도하겠지만, 이는 결국 자신들의 무덤을 깊게 파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탄핵사태는 대통령직을 내놓으면서까지 국민의 힘에 올인한 노무현의 승부수이다. 이 싸움에서 지면 우리는 10년을 후퇴할 것이고, 이기면 10년을 전진할 것이다.
칠레 시민들은 아침부터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의 음성을 듣고자 이리저리 라디오 채널을 돌렸다.
해군이 반란을 일으켰다.사람들은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고 생각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칠레에서는 반란의 공기가 여기저기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이번 쿠테타시도는 사실상 3번째였다.
아옌데는 세계최초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회주의 정권이다. 아옌데는 정권을 잡은 후에도 기득권세력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왔다. 아옌데대통령은, 이러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곧 재신임투표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민의 44%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된 아옌데는 재신임투표에서도 승리할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이러한 남미의 사회주의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준비해왔다. 그들은 군사혁명위원회(군사평의회)를 만들고 의장에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육군 최고사령관을 선출한다. 군의 이런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아옌데는 국방장관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 쿠데타 여부에 대해 조사하도록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날 아침 아엔데 대통령은 장관의 보고를 듣고 7시 30분 19명의 경호원과 함께 대통령 관저인 모네다궁에 들어갔다. 대통령의 집무실인 인디펜던스홀(독립관)은 칠레의 독립선언서가 소장되어 있는 역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 시간, 쿠데타에 참가한 칠레 경찰대가 탱크를 앞세워 모네다궁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었다. 아옌데는 먼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이번 쿠데타의 주모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군.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연루돼 있는 것 같아.잠시 후 쿠테타군은 칠레의 여러 방송국들을 점령해나가기 시작했다. 살바도르 아엔데 대통령은 아직 쿠테타군이 점령하지 않은 유일한 국영방송 마가야네스라디오에 전화를 걸어, 마지막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다.
이번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곧 마가야네스 라디오도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용기를 주고자 하는 나의 목소리도 닿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나의 목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이제 고난의 시대를 살게될 모든 국민에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민중의 충실한 마음에 대해 생명으로방송직후 대통령궁은 경찰과 군 병력, 장갑차, 탱크 등에 완전 포위됐고, 공중에는 칠레 공군 소속의 전폭기들이 선회비행을 했다. 피노체트를 포함한 군부는 대통령에게 항복을 하면 해외망명의 기회를 주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물론 아옌데 대통령이 그런 제의를 받아들이지도 않았지만, 설령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미국은 아옌데가 탄 비행기를 격추시킬 계획이었다.
보답할 것입니다. 나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운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나와 같은 다른 사람들이 또 승리를 거두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할 것이고, 그리하여 보다 나은 사회가 건설될 것입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내 한목숨 잃는다 해도 이를 여러분들은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 분명히 믿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우리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9월 11일 10시 40분, 아옌데 대통령은 두 딸을 포함해 모든 여자들을 내보내고 대통령 경호대에게 대통령궁을 빠져나갈 것을 명령했다. 정오가 되자 쿠데타군의 공군 전폭기에서 대통령궁으로 폭탄이 투하되었다. 공군 전투기의 폭격 이후 지상군도 탱크를 앞세워 모네다궁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쿠데타군이 모네다궁에 진입하고 얼마 후 몇 발의 총소리가 났다.
모네다궁 공격을 지휘한 쿠데타군의 팔라시오스 장군은 혁명위원회에 짤막한 전문을 보냈다.
임무완수. 모네다 접수, 대통령 사망
쿠데타군의 선봉돌격대를 따라 들어간 군사평의회 정보국 전직 요원은 미국의 언론인 토마스 하우저에게 이렇게 전했다.
대통령은 머리가 터져 마루와 벽에 뇌가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군사평의회는 아옌데가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이후 새로운 칠레에서 단 일주일여의 기간동안 3만여 명의 시민이 학살되었다.
쿠테타를 성공한 우익정권은 노동자, 농민, 빈민들에 대한 전면적 탄압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인민들에게 변화에 대한 체념, 맹목적 애국주의, 실업과 가난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 있는 패배주의를 주입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대통령 경호대까지 밖으로 내보내고 살바도르 아옌데는 최후의 순간까지 쿠테타를 일으킨 반동세력에게 저항하다 살해당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들고 싸우던 소총은 쿠바의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가 선물한 것이다. 하지만 아옌데는 쿠바식 사회주의혁명을 꿈꾸지 않았다. 그는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 역시 아옌데의 이런 생각을 부정하지 않았다. 게바라는 자신의 저서 <게릴라전>에 "다른 길을 통해 같은 목표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살바도르 아옌데에게 동지애를 느끼며"라는 증정사를 적어 선물했다. 그는 지금까지도 칠레 민중은 물론 전세계 민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칠레의 비극만큼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오늘날 우리 노무현대통령 탄핵사건도 이와 같은 사태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극우세력-친일파로부터 시작하여 기득권을 누려온 수구반동세력-이 해방이후 민중이 피로써 일궈온 역사의 진보의 발걸음을 뒤 돌리려는 시도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성과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노무현을 대안으로 생각했지만 많은 후회를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판단을 할 시기가 아니다. 비록 흠이 있을지라도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총선'올인'전략에 맞서 우익들은 대통령탄핵에 '올인'했다. 결국 누가 이기는가 하는 판단은 국민의 손에 달려있다. 정치란 기본적으로 민중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분명한 힘을 아는 사람은 거리의 투사로 정치를 시작한 노무현이다. 분명히 한나라당, (지금의) 민주당, 자민련은 정략적 술수에는 능할지 모르지만, 결코 이러한 정치의 본질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지금은 노무현에 대한 찬/반을 논할 시기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수구냉전시대로 되돌아가는가, 아니면 부패세력들을 청산하고 이념의 스펙트럼이 더욱 넓은 시대로 '진보'하느냐를 결정하는 투쟁의 한복판에 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힘은 지금 오직 국민의 어께에 달려있다. 민중은 지금, 우익의 총공세에 총반격을 가하는 전국민적 투쟁에 '올인'해야 한다.
국민적 저항이 시들해지면, 헌법재판소는 우익의 손을 들어줄 것이 명백하다. 우리는 전국민적 투쟁을 총선까지 고스라니 이끌어가야 한다. 그럴수록 우익은 총선연기나 개헌 등을 시도하겠지만, 이는 결국 자신들의 무덤을 깊게 파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탄핵사태는 대통령직을 내놓으면서까지 국민의 힘에 올인한 노무현의 승부수이다. 이 싸움에서 지면 우리는 10년을 후퇴할 것이고, 이기면 10년을 전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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