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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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도서관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빌려다 읽었다. 정조까지 읽고 그만두었다. 나중에 다시 시간이 나면 이어서 읽어야겠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보니 서로 연결되지 않고 떠돌던 역사적 사건들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이어진다. 초기의 건강하게 돌아가며 견제하는 정치체제가 중기를 넘어서면서 서로 죽고죽이는 판으로 변질되면서 국가통치논리가 오로지 당파와 이념에 매몰되어 희망없는 나라가 되어버린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서 너무 답답하다. 인조의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희망도 사라진 듯 하다.

Ha Ha Ha 유머교수법: 옮긴이의 글

유머있는 사람이 어디서나 환영받는 시대이다. 곁에서 웃음을 주는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세상살이가 복잡하고 각박해질수록 유머는 더욱 빛을 발한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물론 정치인을 뽑을 때, 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 심니어 대학에서 수강신청를 할 때도 교수의 유머 구사능력은 매우 중요한 판단요소로 작용한다. 흔히 '유머'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개그콘서트》 같은 코미디프로그램이나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토크쇼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에 나오는 재미있는 대사나 행동을 곧잘 따라하면 유머있는 사람으로 대접받는다. 하지만 이런 개그를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일상에서 흉내낼 때는 약간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왜냐하면 TV 속 상황과 현실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코미디는 대부분 몇 가지 재미있는 상황을 구성하여 거기에 맞는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형식이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바보 역할을 하고 상대역이 이를 무시하거나 깔보는 대사로 웃음을 유발한다. 이런 코미디가 일반화되다 보니 토크쇼에서도 이처럼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유머가 넘쳐난다. 보통사람들도 '유머있는 사람'으로 대접받기 위해 이런 개그를 일상생활 속에서 써먹는다. 유머감각을 뽐내는 와정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 자존심을 갉아먹고 관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도니 템블린은 이러한 유머는 일상생활에서 절대 피해야 하며 진정한 유머란 바로 창조와 긍정을 담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자면 상대방의 기분을 민감하게 파악해 타이밍을 적절히 맞춰야 한다. 또한 유행어나 유별난 행동에 의지하지 않고도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재치가 있어야 한다. 굳이 웃기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상대방을 늘 기분 좋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진정한 유머감각은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를 몇 개 외우거나  《개그콘서트》를 흉내냄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어찌 보면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정말 창조적인 번역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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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가 1920년대 중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 발음이 나는대로 이름을 붙여 팔았다고 합니다. 커쿠커라 蝌蝌肯蜡 그런데 이 중국말의 뜻은 “밀랍올챙이를 씹는다” 또는 “암말에 밀랍칠을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코카콜라는 제품 이미지와 맞는 이름으로 골몰하다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커우커커우라 口渴口辣 이 말은 너무나 적나라하게 코카콜라의 특성을 드러냈으니, 그 뜻은 바로 “목이 마르고 입이 맵다”는 뜻이었죠. (콜라 마시면 정말 목이 말라요!ㅋㅋ) 중국에 진출한지 몇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좋은 이름을 찾기 위해 골몰한 코카콜라는 1930년대로서는 거금이었던 미화 30달러를 상금으로 걸고 이름공모를 하였는데 그때 당선된 것이 바로 아직까지 쓰이는 이름입니다. 커커우커러 可口可樂 대충 “입이 있어 즐겁다”는 뜻으로 해석되죠. 그래도 앞의 이름보다는 훨씬 낫네요. 1960년대 펩시는 코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리고자 전세계 마케팅에 한창 주력했습니다. 이 때 내세운 슬로건이 바로 그 유명한- Come alive with the Pepsi Generation 입니다. 번역을 하자면 "펩시세대와 살아있음을 느껴보세요" 또는 "펩시세대는 활력이 솟아나요." 정도가 될 것입니다. 젊은층은 펩시를 마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싶었겠죠. 이 때 타이완에서는 이 슬로건을 이렇게 번역하여 광고하였습니다. 펩시를 마시면 죽은 조상도 다시 살아납니다 (back-translation: Pepsi will bring your ancestors back from the dead") 왜 이런 번역이 나왔을까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 아마도 generation>세대>조상, come alive>부활한다 라고 번역했던 것 같습니다. 대단한 상상력!ㅋㅋ KFC의 슬로건 “finger-lickin' good"은 "손가락을...

우리 마음속 단어 - 새다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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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한번 "빨간색"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자, 이제 오렌지빛이 나는 빨간색을 떠올려보세요. 또, 보랏빛이 도는 빨간색을 상상해 보세요. 물론 오렌지빨강이든 보라빨강이든 빨간색이라고 부를 수 있갰지만 "진짜 빨강"과 다르죠? 이처럼 우리 마음 속에는 빨간색다운 빨간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개"는 어떤가요? "개"하면 떠오르는 진짜 개, 개다운 개는 제 생각에 진돗개나 셰퍼드입니다. 비글이나 페니키즈는 개라고 부르긴 해도 개답지 못한 개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판단이 개인적인 취향과는 아무 상관없이 우리 머릿속에 일관되게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오렌지빨강이나, 비글을 더 좋아한다하더라도 빨강, 개 하면 떠오르는 전형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30년 전 미국 UC Berkeley 심리학과 교수인 Eleanor Rosch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20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furniture" "fruit" "vegetable" "bird" "capenter's tool" "clothing"과 같은 단어의 마음 속 전형을 조사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전형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한 예로 새에 대한 전형을 조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거의 모든 학생이 울새나 참새를 새의 전형이라고 보았습니다. 앵무새, 꿩, 신천옹, 큰부리새 다음에, 올빼미, 다음에 펠리컨, 펭귄, 맨 아래 타조 에뮤가 있었습니다. 박쥐는 아예 새로 간주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실험은 미국 전역에 걸쳐 오랜기간 반복적으로 실시되었음에도 그 결과는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문화와 환경이 다른 집단에서는 이러한 마음속 ...

[홍세화의 수요편지]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

 젊은 벗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 사회구성원들은 한겨레신문에 대해 알고 있을까요? 대부분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가령 한겨레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나오는 ‘책과 지성’ 특집면인 ‘18도’를 읽어 본 사람은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한겨레신문이 어떤 신문인지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읽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정보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한국사회구성원은 한겨레신문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물론 ‘가까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입니다. 한국사회 구성원은 민주노총에 대해, 전교조에 대해, 공무원 노조에 대해 알고 있을까요?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다고 믿고 있을까요? ‘알 필요가 없는 것’으로 입니다. 이미 부정적으로 의식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은 어떤가요? 한국 사회구성원이 민주노동당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요? 물론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다고 믿고 있을까요?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 쯤은 이제 거의 모든 한국사회 구성원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중요하게 알고 있는 게 있습니다. ‘접근해선 안 되거나 접근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입니다. 사민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사회주의든 사민주의든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 한다’라는 마르크스의 명제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유 입니다. 이미 의식화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으로.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합니다. 한번밖에 오지 않는 삶, 그 삶을 유지해 주는 것은 건강한 몸이고 그 삶의 지향을 규정하는 것은 의식세계 입니다. 그런데 놀랍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삶의 상태를 유지시켜주는 몸의 건강에 대해서는 엄청난 관심을 갖는데 반해, 삶...

영혼의 단어 - spirit

-Eugene Nida, Towards a Science of Translating: With Special Reference to Principles and Procedures Involved in Bible Translation , Leiden: E.J.Brill, 1964, p.107. "[Meaning is] a complex of relations of various kinds between the component terms of a context situation." -J.R.Firth, The Tongues of Men and Speech ,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70, p110. 단어의 의미는 사전적 정의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어가 쓰인 문장뿐만 아니라, 그 문장과 다른 문장과의 구조적 관계, 그 문장들이 속한 전체적인 텍스트, 이러한 텍스트가 속한 문화적 맥락을 모두 고려해서 파악해야 합니다. The spirit of the dead child rose from the grave. 이 문장에서 spirit은 Nida의 도표에서 7번밖에 해당하는 곳이 없습니다. The spirit of the house lived on. 이 문장에서 spirit은 5번이나 7번이 될 수 있지만, 은유적으로 사용하면 6번이나 8번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맞는 의미가 맞는지는 결국 앞에서 말한 전체적인 맥락에서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단어의 의미 파악은 전체 텍스트를 얼마나 정확하게 분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위에서 예로 든 spirit처럼 영어에서 마구잡이로 쓰이는 단어를 제대로 번역하려면 이런 분석이 꼭 필요합니다. 무작정 영혼이라고 번역해서는 안됩니다. (영어에 이런 단어 많죠? 대표적으로 process, service, facility... 또 뭐가 있나... 여러분들도 한번 찾아보세요.) 마지막으로 덧...

포기

 세상살이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면 붓다가 된다고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린 결론 중 하나, 사는 것은 곧 포기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어릴적 꿈꾸던 수많은 가능성을 하나씩 하나씩 포기하는 법을 배우며 나는 오늘 이렇게 살아 남았다. 나는 얼마나 더 포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