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창조적인 번역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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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가 1920년대 중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 발음이 나는대로 이름을 붙여 팔았다고 합니다. 커쿠커라 蝌蝌肯蜡 그런데 이 중국말의 뜻은 “밀랍올챙이를 씹는다” 또는 “암말에 밀랍칠을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코카콜라는 제품 이미지와 맞는 이름으로 골몰하다 이렇게 바꾸었습니다. 커우커커우라 口渴口辣 이 말은 너무나 적나라하게 코카콜라의 특성을 드러냈으니, 그 뜻은 바로 “목이 마르고 입이 맵다”는 뜻이었죠. (콜라 마시면 정말 목이 말라요!ㅋㅋ) 중국에 진출한지 몇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좋은 이름을 찾기 위해 골몰한 코카콜라는 1930년대로서는 거금이었던 미화 30달러를 상금으로 걸고 이름공모를 하였는데 그때 당선된 것이 바로 아직까지 쓰이는 이름입니다. 커커우커러 可口可樂 대충 “입이 있어 즐겁다”는 뜻으로 해석되죠. 그래도 앞의 이름보다는 훨씬 낫네요. 1960년대 펩시는 코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리고자 전세계 마케팅에 한창 주력했습니다. 이 때 내세운 슬로건이 바로 그 유명한- Come alive with the Pepsi Generation 입니다. 번역을 하자면 "펩시세대와 살아있음을 느껴보세요" 또는 "펩시세대는 활력이 솟아나요." 정도가 될 것입니다. 젊은층은 펩시를 마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싶었겠죠. 이 때 타이완에서는 이 슬로건을 이렇게 번역하여 광고하였습니다. 펩시를 마시면 죽은 조상도 다시 살아납니다 (back-translation: Pepsi will bring your ancestors back from the dead") 왜 이런 번역이 나왔을까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 아마도 generation>세대>조상, come alive>부활한다 라고 번역했던 것 같습니다. 대단한 상상력!ㅋㅋ KFC의 슬로건 “finger-lickin' good"은 "손가락을...

우리 마음속 단어 - 새다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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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한번 "빨간색"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자, 이제 오렌지빛이 나는 빨간색을 떠올려보세요. 또, 보랏빛이 도는 빨간색을 상상해 보세요. 물론 오렌지빨강이든 보라빨강이든 빨간색이라고 부를 수 있갰지만 "진짜 빨강"과 다르죠? 이처럼 우리 마음 속에는 빨간색다운 빨간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개"는 어떤가요? "개"하면 떠오르는 진짜 개, 개다운 개는 제 생각에 진돗개나 셰퍼드입니다. 비글이나 페니키즈는 개라고 부르긴 해도 개답지 못한 개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판단이 개인적인 취향과는 아무 상관없이 우리 머릿속에 일관되게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오렌지빨강이나, 비글을 더 좋아한다하더라도 빨강, 개 하면 떠오르는 전형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30년 전 미국 UC Berkeley 심리학과 교수인 Eleanor Rosch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20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furniture" "fruit" "vegetable" "bird" "capenter's tool" "clothing"과 같은 단어의 마음 속 전형을 조사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전형이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한 예로 새에 대한 전형을 조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위의 도표에서 보듯이 거의 모든 학생이 울새나 참새를 새의 전형이라고 보았습니다. 앵무새, 꿩, 신천옹, 큰부리새 다음에, 올빼미, 다음에 펠리컨, 펭귄, 맨 아래 타조 에뮤가 있었습니다. 박쥐는 아예 새로 간주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실험은 미국 전역에 걸쳐 오랜기간 반복적으로 실시되었음에도 그 결과는 거의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문화와 환경이 다른 집단에서는 이러한 마음속 ...

[홍세화의 수요편지]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

 젊은 벗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 사회구성원들은 한겨레신문에 대해 알고 있을까요? 대부분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가령 한겨레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나오는 ‘책과 지성’ 특집면인 ‘18도’를 읽어 본 사람은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한겨레신문이 어떤 신문인지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읽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정보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한국사회구성원은 한겨레신문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물론 ‘가까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입니다. 한국사회 구성원은 민주노총에 대해, 전교조에 대해, 공무원 노조에 대해 알고 있을까요?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다고 믿고 있을까요? ‘알 필요가 없는 것’으로 입니다. 이미 부정적으로 의식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은 어떤가요? 한국 사회구성원이 민주노동당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요? 물론 ‘알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다고 믿고 있을까요?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 쯤은 이제 거의 모든 한국사회 구성원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중요하게 알고 있는 게 있습니다. ‘접근해선 안 되거나 접근할 필요가 없다는 것’으로 입니다. 사민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사회주의든 사민주의든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 한다’라는 마르크스의 명제가 전혀 통하지 않는 이유 입니다. 이미 의식화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으로.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합니다. 한번밖에 오지 않는 삶, 그 삶을 유지해 주는 것은 건강한 몸이고 그 삶의 지향을 규정하는 것은 의식세계 입니다. 그런데 놀랍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삶의 상태를 유지시켜주는 몸의 건강에 대해서는 엄청난 관심을 갖는데 반해, 삶...

영혼의 단어 - spirit

-Eugene Nida, Towards a Science of Translating: With Special Reference to Principles and Procedures Involved in Bible Translation , Leiden: E.J.Brill, 1964, p.107. "[Meaning is] a complex of relations of various kinds between the component terms of a context situation." -J.R.Firth, The Tongues of Men and Speech ,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70, p110. 단어의 의미는 사전적 정의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어가 쓰인 문장뿐만 아니라, 그 문장과 다른 문장과의 구조적 관계, 그 문장들이 속한 전체적인 텍스트, 이러한 텍스트가 속한 문화적 맥락을 모두 고려해서 파악해야 합니다. The spirit of the dead child rose from the grave. 이 문장에서 spirit은 Nida의 도표에서 7번밖에 해당하는 곳이 없습니다. The spirit of the house lived on. 이 문장에서 spirit은 5번이나 7번이 될 수 있지만, 은유적으로 사용하면 6번이나 8번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맞는 의미가 맞는지는 결국 앞에서 말한 전체적인 맥락에서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단어의 의미 파악은 전체 텍스트를 얼마나 정확하게 분석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위에서 예로 든 spirit처럼 영어에서 마구잡이로 쓰이는 단어를 제대로 번역하려면 이런 분석이 꼭 필요합니다. 무작정 영혼이라고 번역해서는 안됩니다. (영어에 이런 단어 많죠? 대표적으로 process, service, facility... 또 뭐가 있나... 여러분들도 한번 찾아보세요.) 마지막으로 덧...

포기

 세상살이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면 붓다가 된다고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린 결론 중 하나, 사는 것은 곧 포기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어릴적 꿈꾸던 수많은 가능성을 하나씩 하나씩 포기하는 법을 배우며 나는 오늘 이렇게 살아 남았다. 나는 얼마나 더 포기할 수 있을까?

주몽, 고구려, 그리고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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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주몽》 많이 보시나요? 요즘 제가 가장 열심히, 재미있게 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물론 고증의 어려움이 있기는 하겠지만, 드라마에 부여/고구려의 복식과 생활양식이 너무 중국풍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상명대학교 중문학과 김경일교수는 2001년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에서 우리문화의 원형은 만주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바닥에 앉고 눕는 구들장문화(온돌)와 야채를 절여 발효시켜 먹는 문화(김치/된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특한 언어"는 모두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지역, 즉 고구려의 특색이었죠. 이는 중국 한족문화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문화적 요소들이며 코리아를 코리아답게 만드는 요소들이죠. 성리학을 국시로 한 조선의 성립 이후 우리 학자들은 소중화사상에 빠졌고 우리 민족의 원류를 중국한족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수백년 지속되면서 우리는 정말 기형적이고 이상한 역사교과서를 갖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공자가 우리민족을 東夷라고 지칭했는데, 이걸 우리 교과서는 "동쪽의 큰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는 말도 안되는 억지해석을 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東夷는 말그대로 "동쪽에 사는 오랑캐"라는 말입니다. 우리민족이 바로 오랑캐입니다. 오랑캐에 대한 수많은 억지와 왜곡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오랑캐다운 기상을 억누르며 정적으로 살도록 강요받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대륙을 호령하던 기상이 어디 가겠습니까? 세계를 뒤흔드는 월드컵응원에서 보듯이 우리 안에는 피끓는 열정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어딜봐서 수천년 농사만 짓고 살아온 사람들로 보입니까? (물론 우리나라는 남방의 농경민족과 북방의 기마민족,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민족이 혼합되어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무력을 소유한 기마민족이 늘 지배층을 차지하고 문화를 선도했습니다.) 북방의 수많은 오랑캐들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패권문화의 공세에 밀려 역사속으로 사라져갔습니다. 거란, 여진, 말갈, 돌궐, 흉노....

모든 텍스트는 번역의 번역의 번역이다

 Every text is unique and, at the same time, it is the translation of another text. No text is entirely original because language itself, in its essence, is already a translation: firstly, of the non-verbal world and secondly, since every sign and every phrase is the translation of another sign and another phrase. However, this argument can be turned around without losing any of its validity: all texts are original because every translation is distinctive. Every translation, up to a certain point, is an invention and as such it constitutes a unique text. - Octavio Paz, Taduccion: literatura y literalidad (Barcelona: Tusquets Editor, 1971), p.9 모든 텍스트는 그 자체로서 독특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텍스트의 번역이다. 어떠한 텍스트도 완전한 원작이라 할 수 없는데, 이는 언어 자체가 본질적으로 이미 하나의 번역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언어는 비언어세계에 대한 번역이며, 둘째로 어떠한 기호든 글귀든 또 다른 기호와 글귀에 대한 번역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거꾸로 뒤집어도 그 논리적 정당성을 고스란히 유지한다. 다시 말해, 모든 텍스트는 그 자체로서 원작이라 할 수 있는데, 번역은 모두 제각각 고유하기 때문이다. 모든 번역은 어느 정도까지는 하나의 발명품이고, 그 자체로서 하나의 고유한 텍스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