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tish Airways을 꺽은 EasyJ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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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 항공사인 브리티시항공(BA)은 민영화된 지 15년째 되는 해인 2001년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브리티시항공은 지난 3월로 끝난 2001 회계연도 세전순손실이 3억6400만달러에 달한다고 20일 발표했다. 이 같은 실적악화는 영국 구제역 발생, 9.11테러를 비롯한 여러가지 악재가 겹쳐 승객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영국의 대표적인 저가 항공사인 이지젯은 무서운 속도로 커나가고 있다. 이지젯은 최근, BA가 이지젯을 견제하기 위해 지난 1998년 만든 유럽 3위의 저가항공사 '고Go'를 6천5백억원에 인수키로 결정했다. 또한 적자에 허덕이는 BA의 독일 자회사 DBA를 인수해 독일지역 시장점유율을 높일 계획이어서 조만간 아일랜드의 라이언항공Rian Air을 제치고 유럽최고의 저가항공사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95년 그리스 재벌2세인 스텔리오스 하지 오아누(35)가 이지젯을 세웠을 때만 해도 업계에서는 누구나 이지젯이 감히 BA의 자리를 넘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7년 후 이지젯은 9.11테러와 경기침체를 이겨내면서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과 아일랜드 라이언항공처럼 간편한 예약.체크인 절차와 저렴한 항공요금으로 브리티시항공처럼 거대한 항공사들이 흔들리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시장점유율을 늘려갔다. 이지젯은 작은 지방공항 중심으로 운행하는 라이언항공과 차별화해 출장가는 비즈니스맨들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규모가 큰 공항을 중심으로 운행하고 앞으로 스위스 취리히를 비롯, 12개의 신규노선을 추가할 예정이다. 또 새 항공기 75대를 구입하기 위해 보잉 및 에어버스와 한창 흥정을 벌이고 있다. 이지젯이 인수할 '고'도 2001년(3월말 결산) 매출이 전년대비 46%나 증가한 4천억을 기록했고, 순익도 전년대비 4배로 뛴 300억원을 올린 알짜항공사가 됐다. 1년 승객수를 추산해 '고'의 427만명과 이지젯의 770만 명을 합하면 라이언의 1020만 명보다 많아진다. BA는 시장을 급속도로 ...

밀레니엄 돔 - 영국의 야심작이 골치덩어리로 전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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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는 새천년을 맞아 자국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떨치고자 밀레니엄돔을 건설하였다. 원래 밀레니엄 돔은 보수당 정부가 집권 말기 내놓은 계획이었으나 막대한 비용과 현실성 여부로 추진이 지지부진 포기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노동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취임한 토니 블레어 수상이 ‘Cool Britanis(멋있는 영국)’이라는 구호를 내걸면서, 밀레니엄돔을 이 상징물로 삼겠다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웠다. 영국정부의 의욕찬 사업추진으로 포드, 부츠, 마스, 비스카이비 같은 영국의 대표적 회사들의 지원을 받아 가까스로 빛을 보게 되었다

Virgin Group- 세상을 뒤집어 재미있게 돈을 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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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브랜슨 경 Sir Richard Branson 버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오늘날의 버진을 있게 해준 인물을 먼저 소개한다. 바로 이 그룹의 총수이자 창시자요, 살아있는 상징인 리차드 브랜슨이다. '소비자들에게 가장 상냥한 기업가', '자유분방한 서민적 자본가', '대담하고 예리한 협상가', '공격적이고 예측불가능한 경영자', ‘창조적인 리더이자 괴짜 마이더스의 손'으로 유럽에서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그는 긴 머리를 하고 있으며 정장을 입지 않는다. 기존 학별중심의 기업문화를 비판하여 히피자본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리차드 브랜슨은 1950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도전의식과 모험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가 네 살 때 집에서 몇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 그를 혼자 버려두고 집을 찾아오라고 하기도 하는 등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았다. 그의 부모는 다른 부모들처럼 간섭하고, 훈계하는 부모가 아니라 언제나 함께 이야기하고 격려하는 부모였다. 따라서 그의 가정은 언제나 화목하고 자유로우며 활기가 넘쳤는데, 이러한 분위기는 그가 이후 버진을 설립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로 사업을 확장하기까지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Virgin의 시초 ? 아이디어는 항상 가까운 곳에 있다 항상 좌절하지 않고 도전하기를 좋아했던 브랜슨이었지만 그의 학창시절이 항상 밝고 순탄했던 것 만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난독증(독서장애증)을 가지고 있었던 브랜슨은 학교에서 늘 골칫거리인 아이었다. 때문에 그의 성적은 늘 바닥을 헤매었고, 시험에는 낙제하기 일쑤였다.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도 최하위 성적으로 간신히 졸업했다. 브랜슨의 관심은 교실 안에 있지 않았다. 운동을 잘했던 그는 축구, 럭비, 크리켓 등 모든 경주에서 1등을 했고 축구경기 중 무릎부상으로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자 돈 버는 일을 궁리하는 것으로 흥미를 돌렸다. 그의 첫 사업은 가장 가까이에서 접했던 학교 문...

Ford와 Firestone의 타이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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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타이어 제조업체인 파이어스톤은 2001년 5월 21일 더 이상 포드자동차에 타이어를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두 업체가 거래를 맺어온 지 95년 만이다. 미국 언론들은 두 업체의 결별을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988년 일본 타이어업체인 브리지스톤에 팔리긴 했지만 파이어스톤은 포드와 함께 미국 자동차 역사를 만들어온 주역으로 국민들에게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어스톤의 존 램프 대표이사는 "포드가 스포츠.레저차량인 [익스플로러]에 대해 몇 차례 대규모 리콜을 실시하면서 차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번번이 타이어 때문인 것으로 속여왔다"며 "더 참고만 있을 이유가 없다"고 거래중단의 배경을 설명했다. 포드는 자동차 타이어의 접지면 파열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은 오로지 파이어스톤이 공급한 타이어의 질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차체 결함을 부인했다. 미국 연방조사위원회는 지난달 포드 차량의 타이어 파열사고와 관련해 지금까지 최소 170명이 숨지고 500여명이 다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으며, 포드는 이와 관련해 총 12조원이 넘는 5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휘말려 있다. 최근 잇단 리콜조처로 매출이 뚝 떨어지면서 어려움을 겪어온 파이어스톤 쪽은 "지금 잘라내지 않으면 기업의 생명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안팎의 위기의식이 강하게 작용하여"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포드와 파이어스톤의 혈연동맹관계 마감 오하이오주 애크런의 허름한 창고에서 12명의 직원을 데리고 타이어 사업을 시작한 파이어스톤의 창업자 하비 파이어스톤은 1906년 어느날 타이어 하나를 들고 포드자동차의 창업자 헨리 포드를 찾아간다. 탄력을 개선해 울퉁불퉁한 길도 잘 달릴 수 있도록 직원들과 밤새워 만든 신제품이었다. 헨리 포드는 제품을 보자마자 포드의 주력차량인 모델-티의 타이어로 채택한다. 그는 나중에 회고록에서 "내가 믿었던 것은 제품이 아니라 그의 열성과 빛나는 눈빛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두 창업자...

[해리포터] J.K.Rowling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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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만 2550억 ‘돈방석’ 앉아 영국여성중 최고 소득런던/AFP 연합 2003년 11월 한겨레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이 올해 영국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어들인 여성이라고 〈선데이타임스〉가 2일 보도했다. 〈선데이타임스〉가 해마다 조사해 내놓는 보고서에 따르면 올 들어 9월 말까지 롤링은 1억2500만파운드(2550억원)를 벌여들였다. 롤링은 올 여름 내놓은 〈해리 포터〉 시리즈 제5편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통해서만 7500만파운드(1530억원)를 벌었다. 롤링의 수입은 남녀 통틀어 5위이다. 전체 1위는 프로축구팀 첼시의 새 구단주인 러시아 출신의 재벌 로만 암브라모비치로 5억6400만 파운드를 벌어들였으며, 2위는 3억9700만파운드를 벌어들인 유럽 최대 휴대전화 공급업체인 ‘폰스(Phones) 4U’의 설립자 존 코드웰에게 돌아갔다.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은 2050만파운드의 수입을 올려 지난해보다 11계단 뛰어오른 34위에 올랐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과 팝 스타 마돈나는 여성 중 공동 7위였으나 수입은 1550만 파운드로 조앤 롤링의 8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가수들 가운데는 록그룹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올해 6800만달러를 벌어 최고 수익을 올렸다.

레일트랙의 종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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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1979년 보수당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집권한 이후 가스, 수도,통신 등 국영기업체의 민영화를 강력히 추진했지만, 석탄과 함께 철도 민영화는 존 메이저 총리가 92년 총선에서 이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뒤인 94년에야 시작됐다. 앞서 대처 집권 때인 88년 철도민영화 백서가 마련됐으나 야당인 노동당과 철도 노동자들의 반발로 흐지부지됐다. 영국정부는 국영철도를 민영화하면 정부의 재정지출 감소와 서비스 개선 등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철도 노동자들은 국민부담과 사고 증가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영국 정부는 먼저 국영철도회사를 기능별로 100여개로 분할했다. 이들 회사는 민간자본에 인수돼 여객운송회사 25개와 화물운송회사 3개로 재편성됐다. 영국 정부는 이들 기업에 5~15년짜리 사업면허를 줘 영업하도록 했다. 영국 정부는 이와 함께 철도의 유지·보수 관리를 맡은 회사인 레일트랙을 공기업 형태로 설립해 나중에 주식을 매각했다. 운송회사들은 "레일트랙"에 철도 사용료를 낸다. 레일트랙은 2001년 10월, 설립 6년만에 파산하여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민영철도가 제때 운행되는 비율은 전체 편성 수의 79% 수준으로 프랑스의 80%와 독일의 90%보다 낮다. 또한 사고율 증가, 편법 요금인상, 서비스 질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의 철도지원금은 계속 줄어들었다. 결국 다시 국유화되고 말았다. 선택의기술  번역작업 중 수집한 자료

잭 웰치- 피도 눈물도 없는 미국식 경영의 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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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기업인 GE의 회장을 20년간(1981~2001) 지낸 전문경영인이다. 메사추세츠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일리노이대학에서 화학공학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GE의 플라스틱부문에 입사를 하였다. 그는 33세에 GE 역사상 가장 젊은 사업담당 총괄 관리자가 되었으며 부회장을 거쳐 1981년 45세의 나이로 GE의 8대회장이 되었다. 그는 사장에 오른 이래 당시 1백20억달러였던 회사 가치를 몇십배로 부풀려 놓아 '경영의 귀재'라 불린다. 1981년에 GE는 주로 산업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로서 매출액이 279억달러였으나 오늘날에는 우주산업에서부터 TV와 금융업에까지 진출한 거대기업으로서 1700억달러의 매출을 자랑하고 있다. GE는 잭 웰치 회장이 취임한 이래 국제시장에서 1, 2위를 하는 사업만을 남겨놓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핵심사업분야, 첨단기술사업분야, 서비스사업분야의 3개 분야로 정리하였다. 회장에 취임할 당시 170개에 이르는 사업부 중 110개 부문을 정리하였다. 1991년 GE는 IBM을 추월하여 미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 되었다. GE는 잭 웰치 회장의 최정상만을 고집하는 No.1 또는 No.2 원칙에 따라서 '통합된 다양성' '세계화' '기업문화' '벽 없는 조직' 'work-out' '스트레치 목표' '변화가속운동' '6-시그마 품질경영운동' 등 탁월한 경영 철학을 가진 지속적인 경영혁신운동으로 세계초일류기업의 모범이 되었다. 속도(speed), 간결성(simplicity), 자신감(self-confidence)으로 요약되는 웰치의 '3s 리더십' 또한 유명하다. 사장 취임후 5년 간 10만명의 종업원을 해고하는 감량경영을 실시하면서 80년대초 미 업계에 불어닥친 [리스트럭처링] 바람을 주도했고, 그래서 "피도 눈물도 없는", ...